윤정원 X POD

윤정원은 어떤 허물어진 경계 사이에 움직임과 이야기를 관통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으며, ‘시 - 미디어 - 몸’의 관계를 탐구한 <생의 성질>(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 2018), 영상 언어와 무용 언어의 차와 합을 탐구한 <공차적응>(서울무용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2018) 등 무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여러 분야의 언어를 경계 없이 사용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고, 그것을 통해 인간을 위로하는 데에 관심이 있다. 현재는 인간이 등한시하는 존재들, 그림자 아래 가치들, 지위가 상실된 생물과 인간의 접점을 찾아내어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번 《가공컨테이너 01(Fabricated Containers 01) 프로젝트》에서는 <톡토기 인형극>, <토양생물을 위한 VR- 프로토타입>, <공공이 몰 002 Mall>, <상차림새> 작품을 선보인다.

POD Dance Project는 2016년 형제가 창단한 현대무용 그룹이다. ‘Planet of Duo’ 의 약자로 ‘우리가 만들어낸 새로운 행성(2인조의 행성)이라는 뜻이다. 형제 둘이서 시작했지만, 행성에 놀러 와주는 많은 지구인, 외계인들과 함께 이 행성을 빛나는 행성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꿈이다. 최근 <공차적응>(2018), <구인구직>(2020) 등을 선보였고,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상차림새>에 참여하였다.

《가공컨테이너 01(Fabricated Containers 01) 프로젝트》

윤정원은 이 시대를 ‘휴먼 스케일이 확장되고 다변화되는 시대’ 보다는 ‘다양한 논-휴먼 스케일의 영역을 휴먼 스케일로 인용해오는 시대’로 바라본다. 그것은 인간(휴먼)의 시점으로 확장된 가상세계를 바라보기에 앞서, ‘논-휴먼’의 시점에서 가상세계에 접속한 인간을 보는 일이다. 윤정원은 이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 ‘논- 휴먼 스케일은 어떻게 휴먼 스케일로 제작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두 가지 방향의 연구를 진행했다. 하나는 실제 존재하는 다른 종(種)과 다양한 뉴미디어에서 만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고인(故⼈)을 위한 제(祭) 의식에서 착안한 퍼포먼스’로 만나는 것이다. 이는 미래 인류의 뉴미디어에 대한 접근 방식이, 토양 미생물이나 조상귀신을 대하는 우리의 접근 방식과 유사하거나, 반대로 우리가 그것들의 입장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를 통해 미래 인류의 처지를 예측해보고자 함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총 4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설치 공간 정면에 보이는 프로젝션 영상은 실시간 스캐닝 영상, 수어 자막, 불어 나레이션으로 구성되어있다. 영상 속 불어 나래이션은 무엇인지 모를 실시간 스캐닝 영상 속 생물체에 대한 정보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줄 타는 광대 대목을 읽는다. 수어 자막은 기호의 역할만 수행할 뿐, 그가 어떤 존재인지는 제거된다. 이는 누군가의 움직임이 기호화되는 순간 전혀 다른 것이 됨을 나타낸다. 다른 한쪽에 설치된 작품은, 토양생물의 움직임 데이터를 받아서 가상 공간의 인간 인형을 조종한다. 관람객은 VR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를 통해 인간 인형의 시점을 경험한다. 윤정원은 이번 프로젝트의 4가지 작품을 다음과 같은 작가 노트를 바탕으로 시작하였다.

<톡토기 인형극 Springtail Puppet Show>

“인간은 인간이 아닌 어떤 것에 대해 분리하고, 관리하려고 한다. 인간이 아닌 생물들은 선반으로 쌓아 올려진다. 이렇게 ‘쌓는다’는 것은 경제성, 가시성, 생산성 등의 목적으로 인간이 효율적으로 대상을 관리하려고 하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쌓아 올려진 생명에서 생산되는 정보와 영상들은, 마치 서버실에서 송출되는 서비스들처럼, 유기물에서 무기물로 완전히 다른 성질의 것이 되어 인터넷망을 타고 흘러간다. 유통된 개별 데이터는 실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지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다중매체, 설치, AR, XY plotter, Arduino, 수어통역사 비디오, 나래이터 비디오, 비디오 꼴라주(출처 작품 내 표기), 공사용 차광막, 랙선반, 2×3×2.3m

<토양생물을 위한 VR-프로토타입 VR- Prototype for Soil Organisms>

“최근, 마치 인간의 전지전능함으로 대변되는 ‘가상현실’을 토양생물에게도 쥐여주고자 한다. 우리는 우리가 딛고 있는 대지가 끊없이 소멸하고 창조된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만약 다른 현실이 만들어지면, 그곳의 대지는 누가 만드는가. 토양생물이 조종하는 인간 인형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우리가 제작한 가상 현실 속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VR, 가상현실, 서버랙, 아날로그티비, 살아있는 토양생물과 식물, 1×1×1m윤정원, 김도헌

<공공이 몰 002 Mall>, <002 하네스>, <002 관찰 도구>, <002 하우징>

“먼 미래 토양생물도 도덕적 지위를 가지게 된다면 발명될 용품들을 상상해본다. 인간은 동물에게 도덕적 지위와 권리를 부여하면, 반드시 투명한 집과 목줄도 함께 선물한다.”

<상차림새 Table Setting>

“제(祭)의식은 겉으로는 신을 초대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나 실은 형식적으로 지극히 인간의 관점, ‘휴먼 스케일’로 이루어지는 퍼포먼스다. 귀신, 조상, 신, 정령이 존재들이 마치 인간처럼 밥상머리에 앉아 숟가락을 뜨고, 생선의 머리 방향을 신경 쓰고, 절을 받고, 무당의 노래를 들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인간적인 약속들로 만들어진 상차림은 일종의 오래된 가상현실이다. 제의식을 통해 우리의 공간이 조상 신이 접속할 수 있는 가상의 현실로 꾸며지고, 신과 인간의 중간지대를 형성한다.”

이진우 안무, POD 퍼포먼스 영상, 15분 28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