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게임의 변화와 인스피레이션 게임 |

 이정엽

‘Independent thinking’을 정체성으로 가진 ‘인스피레이션 게임’은 기존의 시리어스 게임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게임 생태계를 창출하고, 더 나아가 플레이어가 플레이를 통해 주체적으로 게임에 개입하고 세상을 사유할 수 있는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자 제안되었다. 「This War of Mine」,「After Days」, 「21 Days」와 같은 게임은 사회 문제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로서 새롭게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지금까지 게임을 둘러싼 다양한 층위들을 살펴보았다면, <인디게임의 변화와 인스피레이션 게임>에서는 다시 게임이라는 본연의 매체로 돌아와 게임이 지닌 고유한 매체성에 관해 고찰해보았다. 최근 게임은 단순한 오락적인 기능만 가진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다루고 문화적인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로 점차 성장해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기존에 상업적으로 흥행해 온 게임들과는 전혀 다른 소재와 게임 메커닉을 적용한 참신한 게임들이 국내외에서 의미 있는 성공을 이뤄낸 사례들이 늘어났다. 이번 강연에서는 이런 게임들을 지칭하는 새로운 용어로서 ‘인스피레이션 게임’을 제안하고, 이들이 풍성하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게임 창작·유통 생태계 전략까지 함께 살펴보았다.

오늘날의 사회 문화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플레이어들에게 유희를 넘어 의미 있는 가치를 전달하는 게임들을 일컬어  '인디게임(indie game)'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인디게임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게임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이들은 기성의 자본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이를 게임 분야로 한정하여 바라본다면 투자회사나 퍼블리셔로부터 게임의 내용에 대한 간섭을 배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개발자 자신이 만들고 싶은 독창적인 게임을 만든다는 의미를 함유하기도 한다. 즉, 누구로부터의 간섭을 배제한 ‘독립적인 생각(independent thinking)’이 인디 게임의 정체성에 가장 중요하다.

indie games = independent(독립적인) + games(게임)

하지만 요즘은 수없이 많은 인디게임들이 대중에게 선보여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인디게임만을 전문으로 하는 퍼블리셔들도 생겨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를 보면 사실상 인디게임이 자본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이 가능한지에 관한 의문이 생긴다. 

본질적으로 게임은 역학적 요소(mechanics)와 동적 요소(dynamics), 미학적 요소(aesthetics)로 나누어진다. 이 중 게임의 토대를 이루는 요소는 역학적 요소. 역학적 요소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게임의 규칙과 인터랙션 메커니즘을 결정짓는 요소이다. 그중에서도 인디 게임은 다른 게임에서 시도되지 않은 역학적 요소를 창안해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이러한 시도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인디게임의 대표적인 사례로 <페이퍼 플리즈(Papers, Please)>(2013)를 살펴보았다.

<페이퍼 플리즈(paper, please)>, 2013

<페이퍼 플리즈>는 Lucas Pope가 개발하여 2013년 출시된 인디 게임으로, 디스토피아적 국가인 Arstotzka(아스토츠카)의 출입국 관리관이 되어 일을 하는 퍼즐 비디오 게임이다. 한국에서는 <동무, 려권내라우>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어떤 사람을 여권 심사에서 통과시킬 것인가에 따라 나라의 내정 분위기가 바뀌고,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사람을 실수없이 심사해야만 가족들의 생계가 해결된다. <페이퍼 플리즈> 속 이러한 소재와 설정은 알레고리(Allegory)로 대변되는 전체주의 사회의 폭압적인 문제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러한 인디게임의 전통적인 장르는 크게 퍼즐을 푸는 전통적인 인디 게임의 형식인 플래포머 장르, 로그라이크, 생존 게임으로 볼 수 있다. 최근의 인디게임들은 장르, 메커니즘이 결합되는 퓨전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Crypt of the NecroDancer)>(2015)를 살펴보자.

<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Crypt of the NecroDancer)>, 2015

리듬 게임과 로그라이크가 만나 독특한 장르로 탄생한 <크립트 오브 네크로댄서>는 2015년 Brace Yourself Games가 출시한 게임이다. 기본적으로 로그라이크 장르이긴 하나, 배경음악의 리듬에 맞춰 한 칸씩 이동해야 한다는 독특한 플레이 방법을 지니고 있다. 개발자들은 기존의 메커닉만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진입장벽이 높은 로그라이크 장르에 리듬 게임을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리듬 게임의 요소를 추가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플레이어의 지속적인 인터렉션, 리드미컬한 조작력을 요구하며 더욱 게임의 몰입감을 유발시켰다.이외에도 게임의 메커니즘을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시켜 성공적으로 플레이어들의 평가를 받은 <다운웰(Downwell)>(2015)이나 <더 롱 다크(The Long Dark)>(2014)와 같은 게임들을 함께 살펴보았다. 
오늘날 한국 게임 시장은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의 비중이 약 97%에 달하며, 세계 게임시장과 비교했을 때, 비디오 게임, PC 게임, 아케이드 게임 시장이 전무하다는 기형적 시장구조를 지녔다. 그러나 2017년 <배틀그라운드(PUBG: Player Unknown’s Battlegrounds )>를 통해 한국이 단 한 번도 1위를 차지하지 못했던 스팀 플랫폼에서 최다 판매 및 최다 동시접속자 1위를 차지하며 게임시장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하지만 이 외에, 사회적이고 문화적 가치를 담은 인디게임으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국내 게임 사례가 있을까? 한국은 다양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문화적 가치를 담은 게임을 창작할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지에 관한 고민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고민의 결과로 나타난 '인스피레이션 게임'은 한국 게임의 다양성과 문화적 가치 고양을 위한 게임 창작·유통 생태계를 개선하고 전략을 발굴하고자 시작되었다. <디스 워 오브 마인(This War of Mine)>은 폴란드11 비트 스튜디오(11 Bit Studio)가 유럽의 내전과 전쟁을 바탕으로 개발한 게임이다. 이는 전쟁의 참상을 겪은 민간인의 관점에서 진행되며,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전쟁의 심각성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색다른 연출 방법을 시도하였다. 이는 단순히 상업성, 유희만을 목적으로 하는 게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가진 게임들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시이다. '인스피레이션 게임'은 이처럼 사회문화적으로 의미가 풍부한 게임 창작 프로젝트의 성공 사례 분석하며, 창의적 시도를 지원하는 게임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실현 가능한 전략들을 제시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국내에서도 네팔 지진 문제를 다룬 <애프터 데이즈(After Days)>(2015)나 유럽 내 시리아 난민 문제를 이야기하는 <21 데이즈(21 Days)>(2016)와 같은 게임은 사회문제와 문화적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로서 새롭게 게임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고, 사회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게임을 지칭하는 '인스피레이션 게임'이라는 용어가 고안되었다. 

<21 데이즈(21 Days)>, 2016

<21 데이즈>는 이정엽 교수님을 필두로 순천향대 한국문화콘텐츠학과 학생들이 함께 모여 개발한 게임이다. 모하메드 셰누라는 시리아인이 독일에서 난민 자격을 취득하여 정착해 가는 21일 동안을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구현한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학생들과 이정엽 교수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실제로 시리아 난민과 관련된 여러 자료를 수집하고, 실제 정보를 게임에 반영하였다. 특히 그 과정에서 게임이 어떤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대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플레이어가 제3자 입장에서 이 사태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임 메커닉을 구성했다. 이 게임은 부산인디커넥트 페스티벌(BIC)에 게임을 출품하여 최우수 서사 부문상 후보에까지 올랐고, 스팀 플랫폼을 통해 정식으로 출시가 되었다. Games for Change와 같이 사회적 게임들을 중개하고 연구하는 해외의 사례들에 비해, 국내에서의 인스피레이션 게임의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지만, 한국 게임 업계에서도 다양성을 위한 시도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의 상업적인 성과가 미미했던 이유는 게임의 전반적인 완성도의 문제도 있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했던 외국의 사례들이 정부나 기업, 재단 등으로부터 받았던 외부적 지원이 없었던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사회·문화적 가치를 고양하고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게임들은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전반의 인식을 긍정적으로 전환시키고, 그간 하위문화(subculture)로 분류되었던 게임을 다양한 표현과 연출이 가능하고 개발자의 메시지와 사상을 전달할 수 있는 주류 대중 매체로 만든다는 점에서 다양한 긍정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18) 이러한 점에서 인스피레이션 게임은, 다양한 인디게임 중에서도 기존의 시리어스 게임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게임 생태계를 창출하고, 더 나아가 플레이어가 플레이를 통해 주체적으로 게임에 개입하고 세상을 사유할 수 있는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데 기여한다. 게임이 가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방향적인 매체로써 플레이어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와의 상호작용을 이루며 능동적인 주체로서 한걸음 다가설 수 있도록 우리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스피레이션 게임'이라는 새로운 용어는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지닌 특수한 매체성과 가능성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참고 자료문화적 가치 고양을 위한 게임 창작 · 유통 생태계 전략 연구 최종 보고서, 2018, 한국콘텐츠진흥원(순천향대학교 산학협력단)
이정엽(순천향대학교 한국문화콘텐츠학과 교수)이정엽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인디 게임과 게임 메커니즘, 게임의 서사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 중이다. 또한 ‘쉔무 온라인’을 비롯한 여러 게임 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제자들과 함께 설립한 (주)엑스몬게임즈 감사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역서로 『캐주얼 게임: 비디오 게임과 플레이어의 재창조』(201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