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영상매체 | 곽영빈, 강신규

오늘날 영상매체의 게임화 현상은 현실과 게임 간의 간극을 좁히고 있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게임인가? 이를 가장 대표적인 현대 미디어인 영화와 방송을 통해 고찰해보았다. 게임이 현실과의 간극을 좁히는 차원에서 영화(영상)와 만나고 있음을 게임으로 인한 영화의 변화, AR(증강현실) 영화, 게임을 차용한 영상 작품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방송의 경우, 게임을 방송 소재로 활용하는 ‘게임의 방송화’와 함께 게임의 논리를 방송에 적용해 방송 수용 경험을 변화시키는 ‘방송의 게임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전통적인 방송의 이야기가 통사적 형태를 갖추면서 연속적으로 제시된다면, 게임화한 방송의 이야기는 불연속적, 다중적으로 제시된다. 다시 말하자면, 게임화된 방송은 ‘플레이어적 텍스트’라 볼 수 있다.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두 개의 미디어는 영화와 방송이다. <게임과 영상매체>에서는 오늘날 대표적인 영상매체로 알려진 영화와 방송 속에서 나타나는 게임화 현상을 살펴보았다. 게임은 현실과 가장 동떨어진 매체 중 하나였지만, 오늘날 영상매체의 게임화 현상은 현실과 게임 간의 간극이 더욱 좁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게임인가? 우리는 이를 가장 대표적인 현대 미디어인 영화와 방송을 통해 고찰해본다.
곽영빈은 이번 강연에서는 영화, 더 나아가 미술(영상)에서 게임과 현실 간의 간극이 갖는 함의를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살펴보며 영화와 게임의 관계가 오늘날 어떠한 위상을 지니고 있는지 분석해보고, 이를 통해 게임과 현실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질문을 제기했다.
첫 번째로 게임으로 인한 영화의 변화는 어떠한가? 영화 '악녀(2017)'의 오피닝 장면인 원테이크 액션 시퀀스는 영화 '하드코어 헨리(2014)' 속 FPS 게임의 형식을 현실에 재현하였다. 이는 '게임으로서 영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하드코어 헨리'는 1인칭으로 풀타임 영화가 진행되는 신개념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로 소개되었다. 색다른 시도를 보여준 이 영화는 게임의 시나리오를 차용하여 만들어졌다. 영화 '악녀'의 오프닝 장면 역시, '하드코어 헨리'처럼 관객들에게 1인칭 FPS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같은 경험을 제공해 준다. 게임으로 인해 파생된 이러한 독특한 장르의 영화는 게임이자 영화이며, 영화이자 게임인 것이다. 

영화 <악녀>,  2017

영화 <하드코어 헨리(Hardcore Henry)>, 2014

두 번째로 'AR(증강현실)로서의 영화'를 살펴보았다.작년도 베니스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VR 섹션이 생겼고, 한국의 김진아 감독이 ‘동두천’이라는 단편 영화로 시나리오 상을 받았다. '동두천'은 360도 VR 기술(오큘러스 리프트)을 잘 구현하여 만든 영화로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냈다. 이러한 VR 영화가 기존의 영화의 양식과 더 나아가 VR로 구현된 게임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영화 상영관이 필요 없어진다는 점이다. VR기기와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하며 관객은 가만히 앉아서 수동적으로 보았던 전통적인 영화와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기기만 착용하면 제한된 공간에서가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영화로의 몰입이 가능해진 것이다. 관객들은 이러한 VR 영화를 통해 게임처럼 즐길 수 있게 되었다.또 다른 사례로 서울에서 영화 '사울의 아들'을 VR로 체험할 수 있는 시사회를 살펴보았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관람객들이 영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와 트라우마를 VR 기기를 통해 전통적인 영화와 달리 더욱 직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게임의 형태를 빌려 인터렉티브가 가능한 영화들은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는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기술적인 토대 위에서  우리는 영화를 단순히 시청하는 수동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직접 우리가 겪어본 것처럼 느낄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영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기술적인 지지체와 게임의 형식, 양식 위에 영화가 이처럼 관람객들과 상호작용이 가능해졌을 때, 과연 게임은 점차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영화 <동두천(Bloodless)> 스틸컷, 2017

영화 <사울의 아들(Son of Saul)>, 2015

이처럼 게임의 형태와 양식을 차용한 영화 외에 미디어, 영상 작품 또한 함께 살펴보았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김웅용 작가의 <DEMO(2018)>는 게이머 2명이 등장하는 3채널 영상 작품으로, 게임의 3D 영상과 실제 영상이 겹치며 비행기 납치극의 상황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는 데모(Demo)라는 1970년대 일본에서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때에 일본 적군파의 비행기 납치 사건과 당시 실제 뉴스 화면, 공항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 시뮬레이션이 교차되어 나타난다.현실의 사건을 게임적 상상력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이 작품은 현실과 가상,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현실조차 게임 속 가상으로 비춘다. 특히 이 모든 것이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 하나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게임과 마찬가지로 현실 또한 마우스, 키보드를 조작하는 손가락 '하나'만으로 엄청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섬뜩한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 게임과도 같은 작품이지만 조이스틱이나 플레이를 구현하는 실제 기기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게임의 형태와 양식으로 현실을 재현하고,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웅용, <데모(DEMO)>, 2018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몇몇 작품들은 기존의 게임이 현실과 굉장히 동떨어진 매체로 존재했다면, 오늘날 게임을 통해 현실을 다른 형태로 재현하고 이와 상호작용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즉, 게임과 현실 간의 간극을 소거시키고 제거하는 차원에서 영화 또는 영상과 만났던 사례들이었다. 그렇다면 이와는 반대되는 차원의 사례는 무엇이 있을까?
대표적인 사례로 산업화된 살상 프로그램으로서의 '드론'을 살펴보았다.실제로 노르웨이에서 개최된 한 게임 대회에서 실력이 좋은 플레이어들을 파일럿으로 스카웃을 하고자 시도한 일이 있었다. 조종사를 실제로 양성하는 과정에 드는 비용은 어마무시하다. 하지만 실제로 어렸을 때부터 게임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을 스카웃한다면, 그 과정과 비용을 아낄 수 있으며 빠른 시일 내에 전장에 투입할 수 있다는 중요한 전략으로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즉, 게임의 인터페이스 자체가 드론, 비행기를 조종하는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며 플레이어들에게 이를 게임이자 유희로서 즐기게 하고, 실제 사람을 빠르게 살상할 수 있는 전략을 취했던 것이다. 여기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은 실제로 드론을 조종하며 자신이 실제로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단순히 게임 플레이의 차원에서 이를 즐겼다. 

<Reprieve Foundation: Not a bug splat>

CIA 드론으로 인한 폭격 사상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NOT A BUG SPLAT>는 파키스탄 시민과 어린이들이 제작에 함께 참여하며 미국 엔지니어들이 드론과 조이스틱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현실을 고발했다. 조종사들이 드론으로 폭격을 가할 때, 사람은 오로지 작은 점으로, 벌레로 보일 뿐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더욱 거리낌 없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쉽게 살상을 저지른다. 실제로 아이들에게도 폭격을 가할지 말지 하는 상황에서도 드론 조종사에게 이를 맡긴다. 이러한 현실을 알리고자 시작된 <NOT A BUG SPLAT>는 들판에 실제로 어린아이의 사진을 크게 걸어두며 이 위로 폭탄을 던질 것인가 질문을 던진다. 실제로 미국은 모든 플레이어들을 군사 사업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사람으로 치부하고 있다.  이러한 드론 파일럿은 군인들의 희생도, 용기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지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19세기 이전까지의 전쟁의 양태가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제 전쟁 자체가 게임화되어 단순한 오락거리로 전락해버렸다. 수십억 명의 죽음도 게임처럼 다루며, 전쟁이 곧 유희가 되어버린 이러한 현실은 오늘날 전쟁이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유희가 전쟁이 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이 끝날 필요가 없다고 느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게임의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현실의 공간을 지각하게 되었다. 현실을 인식하는 우리의 경험이 유희적인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극대화시키는 인터페이스 경험으로 대체되었을 때, 과연 무엇이 현실이고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현실과 게임이라는 이분법적인 맥락의 구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차원의 계기들이 알게 모르게 유희로서 우리를 마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강신규는 <게임의 방송화, 방송의 게임화>라는 주제로, 게임을 방송 소재로 활용해 게임 플레이 경험을 변화시키는 '게임의 방송화' 현상과 함께 최근 방송과 게임 간 관계가 '방송의 게임화'로 이동하고 있는 현상을 조망해보았다. 이는 게임을 말하고 보여주는 프로그램(게임 보도, e스포츠 중계 등)에서, 게임의 형식을 차용하거나 내재화한 프로그램(게임적 예능, 인터넷 개인방송 등)으로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게임의 방송화와 방송의 게임화를 각각 살펴보며, 그것이 시청자들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갖는 시대적 의미는 무엇일까?
방송과 게임은 산업적인 측면에서부터 시작하여 대중문화의 한 흐름을 장식하게 되었다. 오늘날의 방송매체란, 전통적인 텔레비전 매체를 넘어 인터넷까지 포함하고 있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파생된 1인 미디어까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 이처럼 방송이라는 매체는 그 범주가 굉장히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게임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가? 우리는 방송과 게임과의 관계 변화를 먼저 살펴보았다.첫 번째로, 게임의 방송(소재)화이다. 이제 게임을 '보는 것' 또한 게임을 즐기는 하나의 행위가 되었다. 플레이어들은 게임 방송을 보고 자신이 플레이하는 것에 이를 적용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처럼 게임에 대해 ‘말하는’ 입장이었던 방송이, 게임을 ‘보여주는' 수준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두 번째는, 방송의 게임화이다. 게임을 ‘말하고 보여주는 ‘방송’이 게임의 형식을 차용하는 방송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방송 프로그램 자체가 게임의 로직을 따라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를 보여주는 것이 MBC '마리텔(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2015~2017

이처럼 게임이 일상과 그리고 일상 속 미디어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을 ‘게임화’라 한다면, 방송은 게임화를 통해 혼성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그렇다면 방송은 왜 게임의 형식을 차용해오는가? 이는 더욱 재미를 추구하는 시청자들의 몰입을 유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게임의 형식과 구조를 하나의 도구로 이용했을 뿐, 게임의 본질에는 주목하지 못했다.우리는 '게임화'라는 개념을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 이를 축소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디지털 게임화’로 새롭게 개념화하여 이를 구체적인 대상과 접목시켜보았다. 즉, 방송이 디지털 게임처럼 되어가는 과정을 조망해보았다.
리좀(rhizome)모델은 다중적이고 분산적인 방송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 게임화한 방송은 이러한 게임적 속성을 수용함으로써 기존의 방송과 다른 텍스트성을 지닌다. 전통적인 방송에서의 이야기가 통사적 형태를 갖추면서 연속적으로 제시된다면, 게임화한 방송의 이야기는 백과사전 항목들과 같이 불연속적, 다중적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은 수용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이 때문에 게임화한 방송을 리좀 모델로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전통적 방송에서의 생산자적 수용이 생산자가 만든 텍스트와 수용자가 상상하는 텍스트 사이에 위치한다면, 인터넷 방송에서는 생산자가 만든 텍스트가 일단 존재하지 않고 수용자가 수용과 동시에 만드는 텍스트만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게임화된 방송은 '플레이어적 텍스트'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방송을 구성하는 데이터베이스 중에서 시청자들에 의해 어떤 데이터가 선택되느냐, 그리고 선택된 데이터들이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만들어지는 이야기 내용도 달라진다.
이러한 게임화한 방송의 수용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게임학자 제임스 뉴먼(James Newman) 은 게임의 수용을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았다. 플레이어 또는 시청자들은 이를 능동적으로, 상호작용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능동적인 수용이란, 텍스트에 실질적인 변화를 동반하지는 않으나 텍스트로 ‘손을 뻗는’ 탐험적 관점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상호작용적 수용은 이야기에 즉각적인 개입과 변형을 동반하는 것을 의미한다. 게임화한 방송을 수용하는 시청자들은 대체로 능동성을 지니며, 특정 국면에서는 상호작용적 참여해나갈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즉, 순차적 시청에서 동시적, 통합적 참여로 나아가는 것이다.이러한 능동성, 상호작용성을 통해 시청자의 역할은 시청자에서 플레이어, 현실 속 게임 참여자, 커뮤니케이터 등 복합화, 다층화되어 간다. 이러한 방송 수용은 게임화를 통해 ‘완성 후 (다른 곳에서) 소비되는 순차적 활동’에서, ‘상호작용적 소비를 통해 완성되는 동시적 활동’으로 혹은 ‘동일 환경에서 동시에 반응, 소비하는 통합적 경험’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이처럼 게임은 이야기가 완성된 상태로 플레이어에게 제공되지도, 그리고 반드시 이야기와 연관되지도 않는다. 대신 플레이어로 하여금 실시간으로 직접 텍스트를 만들어가도록 하기 위해 불완전한 텍스트의 상태로 전달된다.게임과 영상매체, 대중 미디어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존재한다. 게임을 소재로 이용한 영상매체들은 우리의 삶을 보여주고 있으며, 테크놀로지의 현실을 반영한다. 이로 인해 현실을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공해 주지만, 동시에 대중 미디어가 지닌 파급력과 함께 우리의 지각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게임, 영화, 방송은 독자적인 매체로서 존재할 뿐 아니라 각각의 범주를 넘나들며 또 다른 재미를 창출해 낸다. 이번 강연에서는 유희를 제공하고 사회적 이슈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새로운 매체로서의 게임을 살펴본 것에서 더 나아가, 게임화된 현실 속에서 수용자들의 역할에 대해 질문을 남기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수많은 콘텐츠와 미디어 속에서 우리는 이를 어떻게 수용해 나가야 할 것인가?
곽영빈(미술평론가, 영화학 박사)미술평론가로 미국 아이오와 대학 영화와 비교문학과에서 「한국 비애극의 기원」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15년 「수집가 혹은 세상의 큐레이터로서의 작가: 구동희론」으로 서울시립미술관이 주최한 최초의 국공립 미술관 평론상인 제1회 SeMA-하나 비평상을 수상했다. 코넬 칼리지, 서울대, 홍익대, 한예종 미술원 등에서 영화사와 버스터 키튼, 사진이론과 매체미학에 대해 가르쳤으며, 타마스 왈리츠키와 리쥐촨과 함께 2016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의 심사위원을, 2017년 제17회 송은미술대상전과 제4회 포스코 미술관 신진작가 공모전 심사를 맡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현대미술과 오디오-비주얼 이미지, (디지털) 매체미학의 교차점을 성찰한다.
강신규(영상문화연구자, 언론학 박사)서강대학교 언론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SBS 시청자평가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 인문학협동조합 조합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누가 문화자본을 지배하는가?》(공저, 2015), 《게임포비아》(공저, 2013), 역서로 《비디오게임》(공역, 2008), 논문으로 <망가의 초국가적 욕망: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들을 중심으로>(공저, 2014), <‘게임화’로 구축된 텔레비전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게임적 리얼리즘>(공저, 2013), <문화적 수행으로서의 e스포츠 팬덤에 관한 연구>(공저, 201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