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연

황수연은 VR을 이용한 미디어아트 작업과 평면사진, 퍼포먼스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 후반작업자로 참여한 경력이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 제프리 쇼Jeffrey Shaw와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미디어 아티스트로 삶의 방향을 전환하고, 자신만의 작업 방식과 VR을 통해 새로운 미디어 아트를 보여주고자 한다.

황수연, 관념의 콜라보, 5600 X 2800 pixels, VR, 5min, 2018

관념의 콜라보

VR 영상 ‘관념의 콜라보’는 초현실적 공간을 눈이 뻐근할 정도의 실사로 구현하여 그 공간 안에 이미지로 표상된 관념을 그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관념의 콜라보는 총 5개의 장면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장면은 바다와 숲을 배경으로 물이 발 밑으로 흘러오고 있는 장면이다. 앞은 바다로, 뒤는 숲으로 막혀있는 진입로와 출구가 없는 이상한 공간이다. 마땅히 있어야 할 두 다리는 보이지 않고 흘러드는 물은 어느새 붕 떠있는 시공간으로 바뀐다. 두 번째 장면은 알 수 없는 계단 공간이다. 난간 사이의 빈 공간에 붕 떠있는 듯한 착각 속에 허공의 먼지를 바라본다. 세 번째 장면은 화장실이다. 익숙한 공간이지만 어느 순간 누가 틀었는지 모를 수도꼭지와 간헐적으로 허공에 흩날리는 페이퍼 타올이 혼란을 준다. 네 번째 장면은 지하철 역 환승 구간의 무빙워크이다. 방금 지나쳐 간 행인이 다시 반대편에서 나타나 걸어온다. 뒤를 돌아보면 아직 행인의 모습이 보인다. 마지막 장면은 다시 처음과 같은 장면으로 돌아간다. 바다 위 우뚝 솟은 듯한 바위 섬의 모습에서 기이한 풍경은 끝을 맺는다. VR 안에서 한 개인은 시각적으로 초현실적 공간을 경험하지만, 감각과 체험 사이의 괴리 또한 느끼게 된다. 인간의 축적된 경험을 배반하는 이러한 행위는 예기치 못한 감정으로 이어진다. 또한 그 감정과 이성과의 사이에 논리가 작동하여 개개인에게 관념적인 어떤 것 또는 추상적인 관념이 남겨지길 희망한다.

초기 작업 계획

예전에 제프리 쇼와 나눈 대화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언급하며 “경험적 체험 그 자체가 예술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는 ‘작업의 메시지보다 체험하는 방식 자체를 예술로 인식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후 나의 작업에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 나는 이번 작업에서 관람자에게 작품 안에서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만져질 것만 같은 것과 만져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경험적 체험을 만들고 이것이 관념적 사고로 이어지도록 유도하고 싶었다. 나는 이 작업을 통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하고자 했다.


 1) 실사 이미지를 이용하여 초현실적 공간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한가?

 2) 스토리 없이 이미지만을 통하여 관객을 어느 정도까지 몰입을 시킬 수 있는가?

 3) 향후 VR 카메라를 무빙할 경우를 고려해 스티칭에 관한 데이터 확보


작업 과정

경험적 체험을 불러일으킬 초현실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주로 광학적 실사 촬영 소스를 베이스로 하여 여러 가지의 기술적인 과정을 거친다. 나의 작업은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1) 아이디어 및 실사 촬영 2) 촬영 이미지 스티칭 및 수정 – 수직 수평 재형성 작업, nodal position 수정 3) 작업한 이미지 위에 이미지 합성 – 레이어 작업 및 2D 합성, 파티클 합성 등 4) 편집 및 색 보정 5) 사운드 작업 6) 미디어 재생 툴에서 VR이 제대로 구현되는가 확인

황수연, 관념의 콜라보, 실사 촬영(오키나와), 2018

이번 작업을 위한 실사 촬영 장소는 한예종 미술원(장면 2, 3), 신당역 무빙워크(장면 4), 오키나와(장면 1, 5)에서 진행했다. 한예종 미술원의 몇몇 공간은 그 자체로 독특함을 지니고 있어 선택했다. 특히 오전과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는 공간은 몹시 신비로워 보인다. 신당역 무빙워크의 경우 서울영상위원회를 통해 섭외했다. 쾌적한 대신, 그에 합당한 장소 사용료를 지급해야했다. 초기에 생각했던 작업 계획에서는 장면1과 장면5는 애니메이션으로 된 VR 만다라Mandala를 제작하려고 했었다. VR 공간으로의 진입과 퇴장이라는 장치적 측면에서였다. 그러나 작업 도중 계획을 변경하여 실사로 진행했다. 무엇보다 이미 촬영한 공간과 애니메이션이 서로 겉돌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머뭇거리게 했고, 따라서 실사이면서 앞서 촬영한 인공적인 공간이 아닌 자연물이면서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찾아야 했다. 결국 몇 군데의 후보지에서 오키나와가 최종 촬영지로 낙점되었다. 촬영 공간을 대낮에 직접 보았다면 그렇게 신비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의 생태 자체가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특이한 형태의 것이었고, 그것들을 조합해서 만든 최종 형태 또한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관념의 콜라보, 스티칭과 이미지 합성 과정(오키나와), 2018

관념의 콜라보, 스티칭과 이미지 합성 과정(한예종 미술원), 2018

관념의 콜라보, 색보정 과정, 2018

초현실적 공간을 실사로 만들기 위해 거치는 편집과 보정 작업은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기술적인 한계로 실사의 구현에서 어색한 부분이 생기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구체로 된 360도 공간 속에 직선의 인공물 혹은 자연의 형체를 왜곡시켜서 올바른 위치에 옮겨 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었고, 특히 무빙워크와 같은 직선의 형태가 소실점으로부터 다가와서 다시 멀어지는 형태로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 하나의 도전이었다.

에필로그

이번 작업을 통해 얻은 것이 많다. 가장 큰 것은 전시를 했다는 것과 결과물이 잘되건 못되건 상관없이 끝까지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많았다. 어찌 보면 그것은 나 자신이 생각한 것과 구현하는 것 사이에서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이번 결과물 발표를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의 조언과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완성을 포기했다면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전시장에서 관람자의 작품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지켜보는 것도 중도에 포기했다면 결코 몰랐을 소중한 경험이었다.버려야 할 것 역시 적잖은데, 그 중 첫 번째는 반드시 부메랑처럼 되돌려 받는 나의 게으름일 것이다. 좀 더 규칙적인 작업 습관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외부 허가를 받아 촬영하는 과정에서 절차상 무엇이 필요한지 미리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 경험대로 하면 될 거라는 생각에 안일하게 있다가 해당 업무의 주관이 외주로 넘어갔다는 사실조차 몰라서 다급하게 진행한 것은 교훈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가장 아쉬운 것은 작업에 필요한 돈을 아끼려다 결과물에 직접적인 영향이 남은 것이다. 지하철 환승 구간을 빌려 찍는데 돈이 드는 바람에 원래 대여하고자 했던 촬영 장비를 취소하고 말았다. 작품을 다시 보았을 때 그 점이 가장 아쉽다. 돈을 쓸 땐 써야 한다. 다시 도전하리라.나는 머릿속에 있는 십여 개의 작업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방법을 찾고 있다. 가장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대규모 장비 보강을 통해 이미지 퀄리티 극대화’이다. 이미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상당한 장비를 보강한 시점이다. 본 작업을 새로운 장비로 다시 구현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 같은 내용이라 할지언정 월등한 퀄리티로 다시 작업하고 싶다. 그렇게 해야만 진짜 완성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진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VR을 통해, 사진과 기술이 가져다주는 미학을 바탕으로 작업을 지속할 것이다.

황수연, 관념의 콜라보(Screening Day), 5600 X 2800 pixels, VR, 5min,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