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민

박훈민은 작곡가이자 드러머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테크놀로지과에서 컴퓨터 작곡을 공부하고 있다. 매크로macro와 마이크로micro, 변화하는 현재와 과거 사이에서 다양한 작법과 기술을 탐구하며, 소리로 이상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한 작업을 한다. 그 구조는 이미지를 품고 있으며, 작품에 따라 외형적인 구조가 더 강조될 때도 있고 내면의 이미지가 부각될 때도 있다. 논리적인 창작 방식이 기저에 깔려 있으면서도, 감각적이고 직관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

박훈민, “Discrete, Indiscrete”, single channel video, 11m 24s, 2018

박훈민, “Discrete, Indiscrete”, publication, 297 x 420cm, 2018

“Discrete, Indiscrete”

분리된, 분리되지 않은.아날로그 신호에 점을 찍어서 분리하면 그것은 디지털 신호가 된다. 디지털 신호의 점들을 다시 연결하면 아날로그 신호가 된다. 사람들은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분리되고 싶어 한다. 인간은 만들어질 때부터 세포의 융합과 분열을 거친다. 생명은 게이트 신호가 1이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노트 오프 메시지를 받기 전까지 굴곡진 포락선 위를 지나며, 그 곡선의 모양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분리와 밀착의 이상적인 균형을 찾는다면, 고독사와 전쟁을 포함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분야의 갖가지 문제들이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다. 작곡가는 본업에 충실하게 소리로써 이 균형점을 찾을 뿐이다.

초기 작업 계획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 교사 전자음악실에는 약 40년 전에 만들어진 빈티지 모듈러 신시사이저modular synthesizer System 100m이 있다. 이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기기에 대한 궁금증과 여기서 나오는 소리를 이용해서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작업이 출발했다. 현재의 디지털 기술은 놀랍도록 발전해서 50년대에 전자음악가들이 몇 날 며칠 테이프를 자르고 이어 붙여가면서 하던 작업을 단 몇 분이면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할 수 있다. 커다란 사인 제네레이터sine generator를 사용해야 만들 수 있었던 정현파sine wave(파형이 정현 곡선을 이루는 파동)도 이제는 단순히 코드 한 줄이면 쉽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최근 영국의 통계에 따르면 LP 판매량이 CD 판매량을 넘어섰다.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압 제어 방식의 모듈러 신시사이저를 사용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 이러한 현상은 디지털 세대들이 겪어보지 못한 과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일까? 디지털은 무조건 아날로그보다 열등한가? 또는 우월한가? 무조건 ‘아날로그가 좋다’ 또는 ‘디지털이 좋다’가 아니라 현재 상황에서 두 가지의 기술이, 두 가지의 사운드가 같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러한 전자음악 작품에 맞는 기보법은 어떤 것일까. 어떻게 기록해야 잘 보존되어 남을 수 있고 오래도록 연주될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과 함께 존 케이지John Cage와 칼하인츠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의 그래픽 악보를 연구해 보면서 현재의 전자음악에 적합한 기보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만들어진 기보법을 토대로 악보와 작업 과정을 기록해 음악을 만들고자 한다.

작업 과정

여러 시대에 걸쳐져 있는 아날로그, 디지털 기기들을 사용해서 전자음악 작품을 만들기 위해 빈티지 모듈러 신시사이저를 이용한 아날로그 소리합성과 슈퍼 콜라이더super collider를 이용한 디지털 소리합성 방식을 혼용하고자 했다. 작업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컴퓨터로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를 제어 2) 아날로그 신시사이저에서 나온 소리를 컴퓨터에 입력 3) 아날로그, 디지털, 디지털 방식으로 변형된 아날로그 등 각각의 소리합성 실험 4) 만들어진 다양한 소리로 전자음악 작품을 만듦

 “Discrete, Indiscrete,” System 100m 빈티지 모듈러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로 소리를 만드는 과정

“Discrete, Indiscrete," 슈퍼 콜라이더로 소리를 만드는 과정

“Discrete, Indiscrete,” 소리합성 실험과 연주 연습

“Discrete, Indiscrete,” 손으로 쓴 악보

“Discrete, Indiscrete,” 일러스트레이터로 다시 그린 그래픽 악보

에필로그

2018 창작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손으로 그려서 만들어놓은 기보를 다시 복기해 그래픽 악보를 만들었는데 그 과정을 통해 작품의 짜임새를 더욱 탄탄하게 할 수 있었다. 이 악보 안에 소리합성법, 기기, 회로, 코드에 대한 더 많고 자세한 정보를 담고자 했었으나 지금은 내용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향후 시간이 주어진다면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넣어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연구가치가 있는 악보를 만들고자 한다.

박훈민, “Discrete, Indiscrete,”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