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련

최보련은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일관된 것으로 서술하기 위해 이야기와 목소리를 동원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 관심이 있다. 비정기적으로 동명의 (가짜) 프로덕션을 내세운 교외신용 협력 상영회(Suburban Credit Cop. Screening)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The Counting

어떤 영역을 극단으로, 또 다른 영역은 중도(golden mean)로 설정하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언어가 있다. 사회화 과정에서 이러한 언어를 발견한 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다른 이들의 삶과 비교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삶이, 혹은 자신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의 삶이 어디쯤 위치하는지 가늠해 보기 위해 이 용법을 제 삶에 적용한다. 가령 자신이 안정적인 삶의 궤도에 있는지, 혹은 불행이나 위험에 처해있는지, 만약 그러한 상황이라면 그 정도는 얼마나 심각한지.이처럼 개인이 자신이 처한 폭력의 상황을 인식하고 표현하고자 할 때, 사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적당한 것/정도/선’을 표현하는 언어가 실제로 도움이 될까? 그리고, 내가 이 용법을 가지고 있어서, 혹은 보고 배워서, 이 용법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을 불행한 사람이라고 마음껏 진단할 수 있을까?<The Counting>은 소위 말하는 ‘적정한 상태’, 즉 ‘중도’와 관련된 우화가 여러 학문 영역에서 쓰이는 용법과 자신이 처한 폭력의 상황을 표현하는 개개인의 언어 사이에서 공통점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유효한지에 대해 질문하던 도중 떠올린 두 가지 우화를 엮어 작성한 각본이다.각본에는 두 개의 씬이 있고, 이들은 상호 내용과 공간, 인물 간의 접점이 없다. 처음부터 이와 같았던 것은 아니었다. ‘주인공 여성이 늦은 밤 귀가하던 중 야외 공간에서 다음날 공연을 리허설 중인 극단을 마주친다’가 본래의 설정이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개연성 있고 선형적으로 만드는 것에 대한 충동 내지는 습관을 걷어내고 제작할 드문 기회라고 또한 여겼기에, 서로 다른 독립적인 이야기로 남겨두기로 하였다. 여러 회차를 촬영하기 어려운 예산상의 문제도 있었다. 말하자면, <The Counting>은 실제 현장의 프로토콜이 아닌, 영화 프로덕션의 외양을 흉내 내는 형식으로 제작을 진행하였다.

최보련 The Counting 

single channel video 21min 45sec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