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작가는 바깥의 보이지 않는 요인으로부터 ‘입력’되는 것들을 가능한 한 감각하기 위해 작업으로 수행한다. 일상과 그 외의 영토에 배치되어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은 우리 내부에 영향을 행사하는데, 그중에서 특정 감각을 일으키는 것의 증거-징후를 포착한다. 포착된 증거-징후는 보이지 않는 요인이 안개처럼 형태 없는 형상이라는 인상을 남기는데, 이때 작가는 외부-내부가 만나는 지점에서 관찰을 시도한다. 보이지 않는 요인으로써 작가는 편집증, 과대망상, 위협, 정보 초과 및 정보 쓰레기 등에서 발생하는 피로와 무력 또한 탐색하며 인과의 굴레를 결정짓기보다 상호 연결망 속에서 발생하는 감각을 포착하고자 한다. ‘뿌리 깊은’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사용한 임시 작가명이다.

‘뿌리 깊은’ 프로젝트는 지난 2016년 SNS 성폭력 해시태그 사건에서 받았던 인상을 떠올리며 시작했다. 수많은 문화예술계 익명의 제보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가해로 지목된 사람들의 실명 리스트들은 그 자체로 효력을 발휘하여 실상 그 인물들에게 사회적인 그리고 실질적인 형벌을 가했다. 해시태그 아카이브는 실제 가해자들의 존재를 밝혀내고 사건의 조사까지 이어지게 해 예술계와 그에 속한 개인들에게 지배적 성 권력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익명의 다수가 손쉽게 아카이브화한 지명 고발로 인하여 실질 가해자와 가해자가 아니었던 사람들까지도 그 영향 아래 있었다. 실제 범죄 사실이 없었음에도 가해자로 몰려 수모를 당한 이도 있었던 만큼, SNS 아카이브로 만들어진 이러한 ‘익명의 지목 고발’이 피해자 발생을 줄이고 불평등한 권력 분배를 공론화하는 좋은 방법이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오프라인상에서도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하는 것이 유행했는데, 내가 겪었던 방법은 다소 거칠고 선동적이었다. 특정 개인의 감추어진 이야기를 스스로 ‘대중’에게 발화하도록 유도하는 부추김의 기묘한 현장. 나는 그 현장에서 발화의 충동을 느껴 이야기를 꺼내었고 연대감을 느끼거나 심리적 체증이 가벼워질지 모른다는 기대는 홀로 보이지 않는 대중들을 대하며 말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자각과 두려움, 허무감, 자괴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쉬이 드러나지 않는 개인의 어떤 이야기는 특정 폐단을 드러내고 개인, 사회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기능을 할 수 있음에 동의한다. 하지만 발화의 방식이 때로는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나는 그 후로부터 안전한 발화의 방식을 고민해 보곤 했다. 그러던 중 해시 태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던 #전통예술계를 주목하기 시작하였는데 계기는 오랜 국악계 지인과의 사담 중에 들은 어떤 고백의 내용이었다. 관련 종사자로부터 성추행을 겪은 후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힘을 실어줘야 할 스승이 가해자와의 친분을 갖고 있어 제자의 상황을 묵인하고 계획적으로 궁지로 몰아버린 일이다. 오랜 방황 끝에 문화재 계승의 문제로 결국 핵심 사건의 가해자들 무리로 다시금 섞여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의 근황이었다. 당시 그에게서 들은 전통예술계 상황은 내부에서 피해 사실을 이야기해도 귀를 닫거나 오히려 피해 당사자가 업계 바깥으로 밀어짐 당할 것이 두려워 해시태그 아카이브가 시도조차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익명으로도 감히 쓰지 못하는 내용을 가진 사람들이 안전하게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방법과 특정 인물을 고발하고 지목하는 양상으로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아닌, 특정 분야 내 개인들의 경험담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사건들의 양상과 맥락,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인식하고 있는 바(변화)를 알고 싶었다. 프로젝트는 처음에는 국악의 정악에서 출발하였다.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지인이 그 업계 소속이기 때문이었는데, 주위의 다른 전통예술계 지인들과 이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할 때 그들 또한 다르지 않은 실상들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정악에 국한하지 않고 국내에 있는 전통예술의 다른 분야들 특히 공연의 형태를 띤 국악, 전통연희, 무용으로 인터뷰이 모집을 위한 분야를 확장하였다. 공예와 한국화, 무예, 음식 등 무형문화재에 속할 수 있는 타 한국예술의 형태들도 있지만, 공연예술의 형태에 방점을 찍은 것은 주로 다수와 협연함으로써 인간관계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더 많다는 특징 때문이다. 한국예술, 전통예술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통예술이 지역과 맺는 관계, 권력 관계, 교육 체제, 지원 체제, 비평, 학연, 인맥 사회 등 다양한 관점에서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맥락들을 짚어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1. 아이디어의 초석 '정(正)' 

‘正(정)’을 사유하게 된 것은 오늘날의 ‘전통’이 가지는 속성을 파악하기 위한 시도였다. ‘정’은 전통예술 내에서도 특히 정악의 속성어인데 처음 이 단어에 집중하게 된 것은 전통예술 내에서 정악이 계급적인 음악이면서 오래된 역사를 지닌 시조 중심의 콘텐츠기 때문이다. 하위장르로 구분 지어진 민속 음악, 민요나 판소리, 사물놀이 등 대중적 요소가 강할수록 형식에 자율성이 있지만, 특정 계층(왕족, 귀족)에서 향유했던 예술 분야는 더 많은 규준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인터뷰를 통해서 그리고 문헌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은 흥미롭게도 한국인이 알고 있는 ‘전통’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어 자체가 대두된 것은 해방 이후였고 예술종사자 중심보다는 민속학자, 역사학자, 국학자, 국문학자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에 의해 연구되며 흩어진 조각을 그러모으는 과정이 있었다. 아마도 이 시기에 모아진 자료로서 ‘선택’된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으리라 고려된다. 예를 들어 처용무는 춤의 형태가 문헌에 의해서 부활하였다. 그러니 사실상 ‘전통’이라는 이름을 붙는 역사는 비교적 짧은 상태에서 전승이 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일제 강점, 한국전쟁 후 서양 근대 문화의 도입에 맞서 한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보여줄 상징적 예술의 기틀을 ‘바로 세우기 위한’ 시도로 전통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니 ‘정’은 그 중심적인 생각을 잘 대변해주고 있는 한자어로 보여 이것을 아이디어의 초석으로 삼았다. 정이라는 한자의 파자를 통해서도 프로젝트의 전체 이미지를 그려보고도 있다. ‘바를 정’은 ‘정악(正樂)’의 첫 번째 단어에 해당한다. 파자(破字)를 해보면 ㅡ, 上, 下, 止로 이루어져 있다. 아雅와 붙어 맑고 깨끗하고 바른 의미로 정이 사용되었다. 정의 유래와 해석은 의미의 조합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는데 ㅡ은 하늘 혹은 길로 止은 발, 머무름, 그침을 지닌 글자이다. 하늘 아래 그침. 상하로 한계를 넘지 않는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또는 하늘이 아닌 길을 상정했을 때 길 위에 멈춰 있는 발이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의 해석이든 정악, 그리고 더 크게는 전통예술이 가지는 큰 속성에 모두 해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한계를 넘지 않는 선에서 동시에 정해진 길 위에 머물러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의 형상이 떠오른다. 

2. 홍보

홍보는 꽤 난관을 거쳐야 했다. 일단 전통예술계는 ‘발언’이 어려운 이유가 분명하다. 발언과 동시에 사회적 매장이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만큼 전통 계승 권위자들의 힘은 막강하기에 시작하는 단계이거나 관문이 남은 이들에게 있어서 ‘발언’은 좋은 선택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전통예술계 내 관습(잘못된 풍습)에 대한 인터뷰 수집에 대해서 홍보를 하는 주체와 인터뷰를 신청하는 이 모두의 ‘철저한 익명’이 보장되지 않는 한 진행 자체가 어려웠다. 나는 작가명과 실명 모두를 가리고 프로젝트의 이름인 ‘뿌리 깊은’으로 임시 명을 사용하였다. 오직 메일의 수발신만이 가능하도록 해야 했다. 따라서 연락을 주었던 이들과도 메신저나 전화상이 아닌 메일만으로 모든 약속과 진행 상황을 주고받았다. 그런 조건에도 연락을 주는 이들은 무척이나 귀한 인물들이고 또한 동시에 자신이 처한 악조건들에 대하여 저항의 의지가 있는 인물들이기도 했다. 홍보의 장소는 주로 서울권 내 전통 예술(동양화, 국악, 전통연희, 한국무용)과가 있는 대학들이었다. 정식으로는 학교 관련학과 행정 조교실을 방문해 그들로부터 홍보 승인 인장을 받아야 하지만 주변 전통 예술인들에게 자문해 본 결과 그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방법이었으므로 새벽과 밤, 주말 시간을 활용해 학교 내 건물에 무허가 배포를 했다. 게릴라성이었기 때문에 청소부 직원들에 의해 떼어내질 수 있는 일들이 다반사였고 그나마 덜 떼어질 장소로 눈여겨본 곳이 화장실 칸막이 문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다녀가는 일시적인 사적 공간인 만큼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연락을 주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안고 9월 한 달간 서울권 8개 대학을 돌아다니며 모집문을 붙였다. 모집문을 붙임과 동시에 메일이 들어왔으나 연락을 주었던 모든 이와 지속적인 연락을 취하는 것은 어려웠다. 일단 이메일의 특성상 메신저만큼 자주 확인하지 않는다는 단점에 의해 무산되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 중의 소수의 사람과만 지속적인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9월에서 11월 15일 전까지 총 6명의 인터뷰이가 있었다. 

3. 인터뷰이들 

1) 첫 번째 인터뷰이 - 국악 첫 번째 인물과는 인터뷰의 추후 재미팅을 약속했다. 그와는 진행에 실패했기 때문인데 여러 이슈가 발생했었다. 그가 다니고 있는 대학 내부에서 미팅하기로 했으나 완전히 밀폐된 장소가 아닌 연습실에서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많은 잡음이 섞인 것뿐 아니라 방음이 아닌 관계로 인터뷰이가 혹여나 이야기가 새어 나갈까 몹시 불안해하였다. 처음에는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의지가 있었지만, 막상 자리에 앉아 레코더를 키고 진행하면서 그 일화들이 세상으로 나왔을 때 자신에게 돌아올 파장을 몹시 걱정하였다. 오프 더 레코드인 상태에서의 인터뷰를 계속해서 요청했고 결국 정식 인터뷰를 접고 레코더를 꺼둔 채 그의 이야기만을 경청했다. 그러고서는 인터뷰의 주의사항을 함께 논의할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로 아래와 같은 포맷을 만들 수 있었다. 
『뿌리 깊은』 프로젝트 주의사항 『뿌리 깊은』 프로젝트를 위한 귀하와의 인터뷰에 있어 다음 사항을 함께 유념해주십시오. 1. 기획인은 인터뷰이의 신원정보를 외부로 유출하지 않고 철저히 기밀에 부침으로서 인터뷰이의 신변을 보호합니다. 인터뷰이의 신원정보는 프로젝트의 학문적 정확성을 위해서만 기획인이 개인 수집 보관합니다.  2. 인터뷰이의 신원 정보는 인터뷰 결과물에서 직접 드러나지는 않겠으나, 인터뷰에 등장하는 사건의 인물이나 지인이 보면 사건의 맥락을 통해 간접적으로 인터뷰이를 의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사전방지하는 전시의 포맷 중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전시는 전통 예술에 속한, 분야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수십 명의 인터뷰이들의 목소리들이 동시적으로 재생되는 장으로 형성될 것입니다. 다수의 스피커가 공중에 매달리거나 지면 및 벽에 붙어 진행되며, 관객이 스피커에 근접해 있을 경우 한 개인의 스토리를 들을 수 있으나, 다른 곳에서도 들려오는 다중의 이야기 소리로 인하여 하나의 사건만을 특징지을 수 없게 됩니다. 즉, 전시장 여러 에피소드 중 사건과 관련된 어떤 특정 인물이 전시를 관람할 경우 스토리의 맥락 안에 ‘자신이 포함된 것 같다’고 의심한다고 하더라도 ‘다수’의 목소리의 동시적 증명이 곧 한 개인으로의 집중을 분산시킬 수 있도록 구조가 짜일 것입니다.  3. 인터뷰이 본인의 익명성뿐만 아니라, 인터뷰이의 에피소드 속 등장인물들 또한 익명화합니다. 그러나 기획인이 인위적인 소리 상의 삭제를 해드리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우선이 아닐 뿐, 실수로 녹음에 들어갈 경우 자체 처리를 해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되도록 인위적인 삭제를 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인터뷰이 자신이 그들의 익명성의 필요성을 주지하고 되도록 이름을 말하는 대신 가명을 쓰는 형식으로 말씀을 해주셔야 합니다. 이는, 에피소드에 담긴 인터뷰이 자신의 상황을 조금 더 세밀하게 포착하기 위해서이고 등장인물의 익명성은, 인터뷰이의 신변 보호뿐만 아니라 이 프로젝트가 고발이 아닌 전통 예술의 현주소 파악과 개선에 더 힘을 실을 수 있도록 하려는 방책입니다.  4. 조금 더 강한 익명성을 요청하시는 분들께는 목소리 변조를 해드릴 것입니다.  5. 작품 중 인터뷰이는 당신이 겪었던 사건들 혹은 들었던 이야기들에 있어서 사실 그대로 들려줄 학문적, 통계적 의무가 있습니다. 사실무근의 소문에 대한 것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더욱 정제된 내용을 통해 관객들과의 공감의 장을 형성하기 위함입니다.
2) 두 번째 인터뷰이 - 국악두 번째 인터뷰이는 인터뷰이 중 가장 연령대가 낮았다. 목관악기를 다루는 그는 인터뷰의 목적과 전시로 인한 국악계 내부의 파급과 개선 효과에 대해 기대를 안고 있었다. 주로 대학 내부에서 있었던 교수의 학생 노동력 무상 착취와 학생들 사이에 있었던 성추행과 그를 덮어버리는 사례들에 대해서였다. 모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나이, 세대별 견해차를 보여주었던 인터뷰 사례이기도 했다. 30대 종사자들과는 다르게 사제 간 압박이나 제한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거부의 의사가 상대적으로 더 강했다. 두 번째 인터뷰이를 통해 인터뷰의 방향과 결과 예상이 추가되었다. 세대별 가치관 차에 의한 전통 양상의 변화이다. 이 인터뷰 뒤로 입문 시기인 10대부터로 인터뷰이 대상자들을 확장했다.
3) 세 번째 인터뷰이 - 현대무용 전통예술이라는 묶음으로 인터뷰이를 한정했지만, 전통예술의 속성을 활용해 작품을 했던 현대 예술인과도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그 역시나, 한국 사회에서 분야에 입문하여 공부를 해왔으므로 이전 인터뷰이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험을 들려주었다. ((예시) 스승의 제자 착취의 문제) 그를 통해 알게 된 것은 활동 가능 무대가 지역적으로 넓을수록 특정 사건에 대해서 ‘말하기’는 전통계보다는 비교적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반면 활동무대가 좁게 국한되어 있는 이들은 분야의 일을 오래 종사 할수록 말하기를 멈추거나 관습이 작용한 연속적인 다수의 사건을 겪어가며 ‘적응’해버리는 양상이 있음을 이후 인터뷰이들을 통해 종합해 볼 수 있었다. 
4) 네 번째 인터뷰이 - 국악개인의 경험담을 담되 자칫 고발의 형태로 강조될 위험을 최대한 피하고자 인터뷰이의 신변에 대한 정보가 어디까지 스토리라인에서 등장시켜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분야의 이야기를 하는데 분야의 속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속 빈 강정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인터뷰이들은 그조차도 꺼렸기 때문에 이 요소들을 드러냄에 있어 다소 소극적인 입장으로 인터뷰이의 자율성에 맡겨 진행했었다. 그러나 정보가 쌓이면 쌓일수록 분야의 특성들이 언급되어야만 그들이 속한 조직의 네트워크를 이해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온 더 레코드와 오프 더 레코드의 에피소드의 강도는 아주 달랐다. 처음에는 인터뷰이가 강요받거나 부당한 일을 행했던 관련자들의 이름을 스스로 익명화시켜 그들 스스로 검열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주저함의 목소리를 추후 결과물에서 드러내려 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말하기의 방식이 그들로 하여금 너무나도 ‘사건을 정리’시켜 버리게 하는 단점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결국은 애초에 의도했던 것과는 달리 감정선을 스스로 다스려 정리해 이야기를 순화해 마무리 지어버리는 것이었다. 네 번째 인터뷰이는 다른 5명과 다르게 사전 미팅이 있었기 때문에 두 번째 전달에서 이러한 특징이 드러났다. 
5) 다섯 번째 인터뷰이 - 한국무용(전승) 다섯 번째 인터뷰이는 30대의 한국 무용수였다. 그는 이미 다수의 공연을 해온 연륜으로 차분하게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들려주었다. 그는 일련의 반복적인 문제들을 겪어왔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상태였고 지금에 와서 과거의 것들을 들추어내기보다는 그것들을 자연스러운 관례로 여기고 주어진 한계치 내부를 벗어나지 않고 경력을 쌓아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듯했다.
6) 여섯 번째 인터뷰이 - 한국무용(창작) 여섯 번째 인터뷰이 역시 30대의 한국 무용수로 전승이 아닌 한국무용 창작영역에서 공부를 이어 나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전승으로서의 춤과 창작으로서의 춤 두 가지 갈래의 차이와 공통점을 이야기해주면서 어디까지를 전승할 수 있는 전통으로서 간주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주었다. 이는 시대 정신성이 드러나는 형식의 변화 가능성, 즉 현실의 대안으로서 전통이 기능할 수 있는 여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야기상에서는 이 또한 미비한 수준에서의 변화였는데 예를 들어 춤을 출 때 입는 의상의 색깔만 달리하는 정도의 차이였다. 이것은 전통예술계의 문화재 시스템과 관련한 문제였다. 명맥을 유지하기보다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준의 변화로 읽혔다. 
7) 어떤 전통예술 관련 잡지 기자와의 메일 인터뷰이를 처음에는 10~30대로 한계지었다가 40대층까지 폭을 확장하였는데 이는 한 국악 관련 잡지 매체의 기사 글을 접하면서부터였다. 프로젝트를 실행하기로 한 불과 며칠 뒤 그 매체에서 국악계 내 성폭  사태를 설문 수집하여 10가지 유형으로 분석해 기사를 내놓았다. 글을 쓴 기자님과 메일을 주고 받았고 그간 써놓았던 기획제안서를 첨부해 보내드렸다. 그는 40대의 중년이었고 자신이 이 프로젝트에 어울리는 연령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터뷰에 응할 수 있다는 답변을 주었다. 차후 프로젝트 진행에 그를 자문 혹은 인터뷰이로서 함께 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중간보고

전통은 과거의 새로운 해석과 저항의 정신을 가지고 유동적인 변화를 이루거나 때로는 고정적인 문화 보존의 역할을 한다. 전통예술의 현주소를 파악하기 위해 형식적, 제도적 특징에 대한 질문과 그 답변들이 있었다.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현 전통이라 함은 제도권의 공식 인정이 중요한데 기존 작품으로부터 완전히 다른 형식으로의 재구성을 인정받기는 어려우며 어디까지 닮아야 원류의 재창작으로 인정받는지도 기준이 모호했다. 제도권으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무형문화재 계승자로부터 정식 계승을 받아야 한다. 전승의 방식 또한 모든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유파별로 한 스승의 한정된 제자만이 이름을 이어받을 수 있으니, 또 그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무형문화재의 등재 자체도 그들에게 집중적으로 지원을 하는 형식이어서 전승자인 스승이 큰 권한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인터뷰이들에게 받은 전체적 인상은 이러한 제도권 영향 안에서는 해를 넘길수록 변주가 자유롭지 못하고 관례에 대한 순응과 체념으로 향할 위기였다. 분야 내부의 끈끈한 가족주의와 계승권 문제, 그로 인한 사제 간 상하 수직 권력 관계, 현세대에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유교 관념으로 인한 성 권력 불평등, 그리고 협소한 무대 기회 등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들의 음악적 속성도 이러한 문제들과 영향을 주고받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생겼다. 한편, 6명의 인터뷰이 중 3명은 성 권력 불평등의 에피소드를 말했다. 공통적으로 업계가 무척 좁아 이야기 중 조금이라도 신상을 드러낼 경우 권력을 가진 이에게 보복을 당할까 우려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에피소드 수집은 한 번으로 되지 않거나 녹화를 중지해달라는 요청을 받는 등 어려움이 있었다. 인습에 대한 문제 제기 중 성 권력의 이슈가 단연 가장 다루기 어려우면서도 동시에 산재해 있었다. 비단 자신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주변인들이 겪은 사건들을 말하고, 또 공유되었다.6회의 인터뷰를 진행한 후 프로젝트 전개를 잠시 멈추고 정리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권력 문제의 고발로만 치우쳐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태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로 전통 예술계 내부에도 긍정적 방향으로의 이변이 관찰되고 있다. 프로젝트의 첫 계기인 안전한 발화의 방식을 갖추며 권력 구조의 뼈대와 그 추이를 드러내는 작업의 목적을 잊지 않아야 함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또, 개인 혹은 팀별 음악적 변화의 가능성과 관례 타파 사이에 관계가 있는지도 연구 차원에서 덧붙여보고 싶은 지점이다.프로젝트에 참여했던 6명의 전통예술인은 나이와 분야가 각자 다르지만, 공통적인 속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폐단을 경험하고 그럼에도 각자의 업을 지속해 나가는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이야기가 긍정적인 힘을 발휘하길 바라여 인터뷰에 응했던 만큼 결과를 내는 과정에 책임감이 무거워진다. 앞으로도 인터뷰이를 더 모집할 예정이다. 만약 이 글을 관심 있게 읽어준 분이 계시고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다면 무척 반갑고 또한 감사할 것이다. 메일은 상시 열려 있다.
inveterate-project@naver.com

뿌리깊은 시원始原을 향한 워밍업 

single channal video 2018 예정

에필로그

1. 인터뷰 모집의 방식 인터뷰 모집에 있어서 홍보 모집에 대한 전략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다. 모집하는 작가 자신조차도 익명으로 가야 했던 것은 사전 준비에서 전통 예술인들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인데 전면으로 이름이 드러났을 때 프로젝트 진행이 양쪽 모두에게 고통스러워질 것이라는 염려들을 해주셨다. 실제로 메일링이 들어왔을 때 정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프로젝트의 주최가 누구인지만 궁금해하는 이도 있었다. 이런 어려움도 있다. 주최를 익명으로 한 이유가 제대로 설득이 되지 않았을 때 안심하고 인터뷰 신청을 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온라인을 통한 홍보도 게재하려고 했으나 이 또한 신상 공격을 받을 우려가 있어 일차적으로는 오프라인상에 서만 홍보가 이루어졌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신상의 공격 없이 프로젝트가 온라인으로 홍보될 수 있는 플랫폼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차기 진행의 과제이다.

2. 인트로 영상_시원을 향한 워밍업,  2018 예정 뿌리 깊은 프로젝트의 핵심어인 ‘정’을 가시화하는 영상 작업 또한 함께 구상 중에 있다.
3. 향후
인터뷰 모음을 통한 작품 형태의 방향 초반 기획 때에는 에피소드의 사건 전개도를 통해 익명의 중심인물들이 여러 에피소드에서 겹칠 수 있음을 가정하고 이를 통합하여 지도를 만들고자 하였다. 인물이 겹칠 정도가 되려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수집해야만 한다. 그래서 인물 중심로만 한정하여 지도화를 고려할 것이 아니라, 공통된 혹은 비슷한 사건의 맥락을 지도로 보여주는 과정도 함께 진행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