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뿌리 깊은
작가는 바깥의 보이지 않는 요인으로부터 ‘입력’되는 것들을 가능한 한 감각하기 위해 작업으로 수행한다. 일상과 그 외의 영토에 배치되어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은 우리 내부에 영향을 행사하는데, 그중에서 특정 감각을 일으키는 것의 증거-징후를 포착한다. 포착된 증거-징후는 보이지 않는 요인이 안개처럼 형태 없는 형상이라는 인상을 남기는데, 이때 작가는 외부-내부가 만나는 지점에서 관찰을 시도한다. 보이지 않는 요인으로써 작가는 편집증, 과대망상, 위협, 정보 초과 및 정보 쓰레기 등에서 발생하는 피로와 무력 또한 탐색하며 인과의 굴레를 결정짓기보다 상호 연결망 속에서 발생하는 감각을 포착하고자 한다. ‘뿌리 깊은’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사용한 임시 작가명이다.
1. 아이디어의 초석 '정(正)'
‘正(정)’을 사유하게 된 것은 오늘날의 ‘전통’이 가지는 속성을 파악하기 위한 시도였다. ‘정’은 전통예술 내에서도 특히 정악의 속성어인데 처음 이 단어에 집중하게 된 것은 전통예술 내에서 정악이 계급적인 음악이면서 오래된 역사를 지닌 시조 중심의 콘텐츠기 때문이다. 하위장르로 구분 지어진 민속 음악, 민요나 판소리, 사물놀이 등 대중적 요소가 강할수록 형식에 자율성이 있지만, 특정 계층(왕족, 귀족)에서 향유했던 예술 분야는 더 많은 규준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인터뷰를 통해서 그리고 문헌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은 흥미롭게도 한국인이 알고 있는 ‘전통’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어 자체가 대두된 것은 해방 이후였고 예술종사자 중심보다는 민속학자, 역사학자, 국학자, 국문학자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에 의해 연구되며 흩어진 조각을 그러모으는 과정이 있었다. 아마도 이 시기에 모아진 자료로서 ‘선택’된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으리라 고려된다. 예를 들어 처용무는 춤의 형태가 문헌에 의해서 부활하였다. 그러니 사실상 ‘전통’이라는 이름을 붙는 역사는 비교적 짧은 상태에서 전승이 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일제 강점, 한국전쟁 후 서양 근대 문화의 도입에 맞서 한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보여줄 상징적 예술의 기틀을 ‘바로 세우기 위한’ 시도로 전통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니 ‘정’은 그 중심적인 생각을 잘 대변해주고 있는 한자어로 보여 이것을 아이디어의 초석으로 삼았다. 정이라는 한자의 파자를 통해서도 프로젝트의 전체 이미지를 그려보고도 있다. ‘바를 정’은 ‘정악(正樂)’의 첫 번째 단어에 해당한다. 파자(破字)를 해보면 ㅡ, 上, 下, 止로 이루어져 있다. 아雅와 붙어 맑고 깨끗하고 바른 의미로 정이 사용되었다. 정의 유래와 해석은 의미의 조합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는데 ㅡ은 하늘 혹은 길로 止은 발, 머무름, 그침을 지닌 글자이다. 하늘 아래 그침. 상하로 한계를 넘지 않는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또는 하늘이 아닌 길을 상정했을 때 길 위에 멈춰 있는 발이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의 해석이든 정악, 그리고 더 크게는 전통예술이 가지는 큰 속성에 모두 해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한계를 넘지 않는 선에서 동시에 정해진 길 위에 머물러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의 형상이 떠오른다.2. 홍보
홍보는 꽤 난관을 거쳐야 했다. 일단 전통예술계는 ‘발언’이 어려운 이유가 분명하다. 발언과 동시에 사회적 매장이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만큼 전통 계승 권위자들의 힘은 막강하기에 시작하는 단계이거나 관문이 남은 이들에게 있어서 ‘발언’은 좋은 선택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전통예술계 내 관습(잘못된 풍습)에 대한 인터뷰 수집에 대해서 홍보를 하는 주체와 인터뷰를 신청하는 이 모두의 ‘철저한 익명’이 보장되지 않는 한 진행 자체가 어려웠다. 나는 작가명과 실명 모두를 가리고 프로젝트의 이름인 ‘뿌리 깊은’으로 임시 명을 사용하였다. 오직 메일의 수발신만이 가능하도록 해야 했다. 따라서 연락을 주었던 이들과도 메신저나 전화상이 아닌 메일만으로 모든 약속과 진행 상황을 주고받았다. 그런 조건에도 연락을 주는 이들은 무척이나 귀한 인물들이고 또한 동시에 자신이 처한 악조건들에 대하여 저항의 의지가 있는 인물들이기도 했다. 홍보의 장소는 주로 서울권 내 전통 예술(동양화, 국악, 전통연희, 한국무용)과가 있는 대학들이었다. 정식으로는 학교 관련학과 행정 조교실을 방문해 그들로부터 홍보 승인 인장을 받아야 하지만 주변 전통 예술인들에게 자문해 본 결과 그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방법이었으므로 새벽과 밤, 주말 시간을 활용해 학교 내 건물에 무허가 배포를 했다. 게릴라성이었기 때문에 청소부 직원들에 의해 떼어내질 수 있는 일들이 다반사였고 그나마 덜 떼어질 장소로 눈여겨본 곳이 화장실 칸막이 문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다녀가는 일시적인 사적 공간인 만큼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연락을 주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안고 9월 한 달간 서울권 8개 대학을 돌아다니며 모집문을 붙였다. 모집문을 붙임과 동시에 메일이 들어왔으나 연락을 주었던 모든 이와 지속적인 연락을 취하는 것은 어려웠다. 일단 이메일의 특성상 메신저만큼 자주 확인하지 않는다는 단점에 의해 무산되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 중의 소수의 사람과만 지속적인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9월에서 11월 15일 전까지 총 6명의 인터뷰이가 있었다.3. 인터뷰이들
1) 첫 번째 인터뷰이 - 국악 첫 번째 인물과는 인터뷰의 추후 재미팅을 약속했다. 그와는 진행에 실패했기 때문인데 여러 이슈가 발생했었다. 그가 다니고 있는 대학 내부에서 미팅하기로 했으나 완전히 밀폐된 장소가 아닌 연습실에서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많은 잡음이 섞인 것뿐 아니라 방음이 아닌 관계로 인터뷰이가 혹여나 이야기가 새어 나갈까 몹시 불안해하였다. 처음에는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의지가 있었지만, 막상 자리에 앉아 레코더를 키고 진행하면서 그 일화들이 세상으로 나왔을 때 자신에게 돌아올 파장을 몹시 걱정하였다. 오프 더 레코드인 상태에서의 인터뷰를 계속해서 요청했고 결국 정식 인터뷰를 접고 레코더를 꺼둔 채 그의 이야기만을 경청했다. 그러고서는 인터뷰의 주의사항을 함께 논의할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로 아래와 같은 포맷을 만들 수 있었다.중간보고
전통은 과거의 새로운 해석과 저항의 정신을 가지고 유동적인 변화를 이루거나 때로는 고정적인 문화 보존의 역할을 한다. 전통예술의 현주소를 파악하기 위해 형식적, 제도적 특징에 대한 질문과 그 답변들이 있었다.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현 전통이라 함은 제도권의 공식 인정이 중요한데 기존 작품으로부터 완전히 다른 형식으로의 재구성을 인정받기는 어려우며 어디까지 닮아야 원류의 재창작으로 인정받는지도 기준이 모호했다. 제도권으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무형문화재 계승자로부터 정식 계승을 받아야 한다. 전승의 방식 또한 모든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유파별로 한 스승의 한정된 제자만이 이름을 이어받을 수 있으니, 또 그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무형문화재의 등재 자체도 그들에게 집중적으로 지원을 하는 형식이어서 전승자인 스승이 큰 권한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인터뷰이들에게 받은 전체적 인상은 이러한 제도권 영향 안에서는 해를 넘길수록 변주가 자유롭지 못하고 관례에 대한 순응과 체념으로 향할 위기였다. 분야 내부의 끈끈한 가족주의와 계승권 문제, 그로 인한 사제 간 상하 수직 권력 관계, 현세대에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유교 관념으로 인한 성 권력 불평등, 그리고 협소한 무대 기회 등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들의 음악적 속성도 이러한 문제들과 영향을 주고받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생겼다. 한편, 6명의 인터뷰이 중 3명은 성 권력 불평등의 에피소드를 말했다. 공통적으로 업계가 무척 좁아 이야기 중 조금이라도 신상을 드러낼 경우 권력을 가진 이에게 보복을 당할까 우려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에피소드 수집은 한 번으로 되지 않거나 녹화를 중지해달라는 요청을 받는 등 어려움이 있었다. 인습에 대한 문제 제기 중 성 권력의 이슈가 단연 가장 다루기 어려우면서도 동시에 산재해 있었다. 비단 자신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주변인들이 겪은 사건들을 말하고, 또 공유되었다.6회의 인터뷰를 진행한 후 프로젝트 전개를 잠시 멈추고 정리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권력 문제의 고발로만 치우쳐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태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로 전통 예술계 내부에도 긍정적 방향으로의 이변이 관찰되고 있다. 프로젝트의 첫 계기인 안전한 발화의 방식을 갖추며 권력 구조의 뼈대와 그 추이를 드러내는 작업의 목적을 잊지 않아야 함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또, 개인 혹은 팀별 음악적 변화의 가능성과 관례 타파 사이에 관계가 있는지도 연구 차원에서 덧붙여보고 싶은 지점이다.프로젝트에 참여했던 6명의 전통예술인은 나이와 분야가 각자 다르지만, 공통적인 속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폐단을 경험하고 그럼에도 각자의 업을 지속해 나가는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이야기가 긍정적인 힘을 발휘하길 바라여 인터뷰에 응했던 만큼 결과를 내는 과정에 책임감이 무거워진다. 앞으로도 인터뷰이를 더 모집할 예정이다. 만약 이 글을 관심 있게 읽어준 분이 계시고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다면 무척 반갑고 또한 감사할 것이다. 메일은 상시 열려 있다.뿌리깊은 시원始原을 향한 워밍업
single channal video 2018 예정
에필로그
1. 인터뷰 모집의 방식 인터뷰 모집에 있어서 홍보 모집에 대한 전략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다. 모집하는 작가 자신조차도 익명으로 가야 했던 것은 사전 준비에서 전통 예술인들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인데 전면으로 이름이 드러났을 때 프로젝트 진행이 양쪽 모두에게 고통스러워질 것이라는 염려들을 해주셨다. 실제로 메일링이 들어왔을 때 정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프로젝트의 주최가 누구인지만 궁금해하는 이도 있었다. 이런 어려움도 있다. 주최를 익명으로 한 이유가 제대로 설득이 되지 않았을 때 안심하고 인터뷰 신청을 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온라인을 통한 홍보도 게재하려고 했으나 이 또한 신상 공격을 받을 우려가 있어 일차적으로는 오프라인상에 서만 홍보가 이루어졌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신상의 공격 없이 프로젝트가 온라인으로 홍보될 수 있는 플랫폼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차기 진행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