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우

김찬우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소재, 예를 들어 밥숟가락, 방귀 소리, 눈 깜빡임 등을 가지고 자신만의 이야기로 풀어간다. 밥숟가락은 여정의 지표가 되고, 방귀 소리는 어제의 추억이 되고, 눈 깜빡임은 알고 싶은 시간이 된다. 그러한 활동들을 통해 우리 주변에 있던 익숙한 대상이 새로운 무언가로 환기되는 (예술적) 순간을 만들고, 찾고, 발견해 가고 있다.

눈 깜빡임 장치

이번 프로그램의 최종 결과물은 눈 깜빡임을 감지하는 안경이다. 적외선 송수신 센서가 눈이 감길 때마다 신호를 보내 장치에 전원이 들어오게 한다. 눈으로 보는 세상 사이 사이, 우리도 모르게 지나가는 눈 깜짝하는 시간 동안 움직이는 장치이다. 이 안경은 키트와 설명서도 함께 제작되어 누구나 쉽게 자신만의 눈 깜빡 장치를 만들 수 있다.먼저 두 가지의 작업을 초기에 구상했었다. 하나는 이전 작업보다 좀 더 발전된 장치를 만들고 싶었다. 그때의 장치는 눈에 직접 전선을 연결해서 눈꺼풀이 감길 때 전원이 들어오는 방식이었다. 이 경우 몇 번 사용 하다 보면 눈에서 떨어지고, 자칫 잘못하면 눈이 감전되는 위험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센서와 아두이노를 활용해서 좀 더 섬세한 감지와 내구성을 가진 장치를 만들고 싶었다.다른 하나는 깜빡임을 저장하는 장치였다. 만약 우리 눈이 카메라라면 그 카메라가 찍은 영상에는 보이지 않는 장면들이 있을 것이다. 아마 영상을 유심히 보아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너무 빨리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보다 필름 또는 데이터를 열어 보면 그 사이사이에 낀 0.1초 시간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우리의 뇌에는 하루에 약 60~90분의 보이지 않는 장면이 저장된다고 한다. 나는 그 틈의 시간을 기록하는 장치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이전까지 Low-tech 방식으로 작업해왔다. 완벽하게 구현되는 작업보다 조금 엉성한 모습에 매력을 더 느꼈고, 미리 준비된 철저한 계획대로 움직이기보다 항상 즉흥적이고 우연에 움직이길 좋아하는 성향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어떤 기술을 배우는 데 노력하지 않았다. 또 나름 이것을 찾아낸 답처럼 정리하고 있었다.한번은 TV를 보다 가수 박진영이 힘들여 멋지게 부르지 말고, 그냥 부르라고 할 때 ‘그래 저거야’ 하며 ‘좀 아는데’ 거리며 우쭐했다. 힘을 뺀 노래, 담담함. 그런 요소들이 노래뿐만 아니라 미술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그래서 힘을 뺀 것과 대충 하는 것, 담담함과 허접함이란 말들과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최근 들어서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기술이 어떤 경지에 올랐을 때 거기에는 감동이 없을까? 엉성한 모습이 항상 어떤 감흥을 일으킬까? 내 작업에서 뭐가 중요한 걸까? 결론적으로 이번 기회에 아두이노를 한번 배워 보고자 했다.처음 발표 때 만들고자 하는 장치가 기술 장비를 통해 완벽하게 구현이 되는 것보다 이전에 만들기 방식일 때가 좀 더 흥미롭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전까지 해 왔던 만들기 방식과 처음 하고자 하는 기술을 어떻게 적절하게 함께 갈지를 연구해 보려고 했다.

작업 과정

1. 초반처음 계획한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아두이노와 책을 구입했다. 맨 먼저 책을 펴고, 가장 기초적인 램프도 연결해보고, 모터도 돌리고, 세그먼트에 숫자도 켜 보았다. 여기까지 괜찮았다. 그다음 내가 만들고 싶은 장치는 어떻게 만들까. 일단 YouTube를 돌면서 이런저런 작업을 찾아보았다. 많은 사람의 눈과 관련된 작업이 있었다. 대부분 카메라로 눈을 찍고, 이미지 정보를 읽어서 작동시켰다.그렇게 YouTube를 떠돌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카메라 장비는 가격도 비싸고, 안경에 달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또 내가 한다고 해도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막막해졌다. 그래! 책이 있었지. 차근차근해보자. 그리고 책을 보기 시작했다. 처음 컴퓨터 언어를 보는 나는 더 머리가 더 아파지기 시작했다. void.. loop 아... 기초부터 배워나가는 건 좋지만 이 방법으로는 본 만들기는 너무 먼 이야기 같았다.

2. 중간보고 이후중간보고까지 막막했다. 진행하려던 아두이노를 배우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발표 이후부터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세운상가가 생각났다. 거기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일단 가보자.세운상가에 멋진 통유리 엘리베이터도 생기고,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층별 안내판을 보았는데 ‘상상제작소’라는 곳이 보였다. 저기면 할 수 있겠다. 바로 3층을 시작으로 각 층을 다니면서 물어보았다. 대부분 부품 판매나 수리를 해주는 곳이 많았다. 가끔 찾은 주문 제작하는 곳은 300만 원의 제작비를 이야기했고, 또 다른 곳은 여기서 만들기 힘들다고 했다. 희망적이었던 상상 제작소도 문이 닫혀 있었고, 연락이 안 됐다. 그러다 처음 가게에 안 계셨던 사장님과 마주쳤다. 이분도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지만 쉽지 않다고 하셨다. 대신 5층 자연랩에 가보면 방법이 나올 수 있다고 해서 올라가 보았다.  

3. 제작부터 결과 보고
찾아간 5층 자연랩. 사장님께서 작업 이야기를 듣고,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작은 터치스크린, 적외선 송수신 센서 등 여러 가지 테스트해 보고, 한번 만들어 보자고 하셨다.다음날 처음 만든 장치를 가지고 다시 방문했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작동은 어떻게 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 봤다. 직접 구해오신 코안경과 다른 안경들 중에서 선택하고, 바로 제작에 들어갔다. 그리고 3일 후에 장치가 완성됐다. 끝에 달린 만보기는 깜빡일 때마다 카운트가 가능하다. 이후로 이 장치에 들어간 부품을 똑같이 구입하고, 그대로 만들 수 있는 있도록 연습했다.그리고 이후에 깜빡일 때 빛이 나는 반응을 이용해서 아두이노로 움직이는 장치를 만들었다. 감은 눈이 떨어지는 장치인데 빛이 들어올 때 눈알이 떨어진다. 그리고 여러 가지 장치로 변형/실험하고 있다. 세운상가의 경우 복잡하거나 몇 번의 실험이 필요하지 않고, 대략 하루 정도 시간이 들어가는 제작은 30-50만 원 선이라고 한다(이 정보는 대략적이며, 제작 난이도에 따라 상이할 수 있다).

2014년 제작한 눈 깜빡 장치

제작소 자연랩 사무실

김찬우 눈 깜빡임 장치 혼합 재료 가변 사이즈 2017

에필로그 

이번 작업을 통해 여러 가지 시도해 볼 수 있었다. 물론 아두이노를 전문적으로 다룰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정보는 알게 되었다.그리고 보통 혼자 작업을 하는 편이었는데 다른 사람과 같이 작업을 해보려고 한다. 모든 부분을 혼자서 한다는 건 어려움이 많았고, 풀리지 않는 부분은 도움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도움을 주신 자연랩 사장님, 정수봉 선생님, 융합예술센터 선생님들께 감사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은 이번 제작을 해보고, 조금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다음은 눈 깜빡 장치를 하늘로 날려보고 싶다. 된다면 우주까지. 내가 깜빡일 때 저기 하늘 위에서도 깜빡이는 장치이다. 블루투스와 비행 관련 기술을 가지고 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