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준

박동준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졸업했다. 사진으로부터 시작하여 디지털에 심취하여 컴퓨터를 이용한 다양한 미디어 작업을 해왔다. 현재는 VR을 이용해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록이라는 특성에 대해 의문을 갖고, 기록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재현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왔다. 그러한 것에 대한 해답으로 존재하지 않는 디지털과 가상공간을 이용하여 풀어나가고자 한다.

그딴 기억

내가 VR이란 매체를 이용하여 가상공간 안에 무언가를 재현하는 것은 우리가 눈을 감고 어떠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눈을 감고 의식이 기억의 차원에 들어가면 그 안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뛰어놀기도 하며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는 장면들도 보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주로 사진이나 영상들의 도움을 받고는 하지만 기억은 시각적인 형태나 이미지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입체적이고, 경험이라는 형태로 머릿속에 기록된다. 그 때문에 나는 가상공간을 통해서 우리가 느끼는 경험이라는 형태를 재현하여 보여주고 싶었다.

다양한 미디어 작업이 그러하듯 장비의 한계로 인해 표현하는 것에 있어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번 창작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나는 제한된 장비의 한계를 해소하고 싶었다. 이전 작업<SpaceLand>는 기억의 오브제들로 구성된 공간을 만들어 보여주는 작업이었는데 이 작업 에서 디스플레이의 해상도만 중요시하다 보니 이미지의 해상도는 좋지만 만들어 놓은 기억의 공간 안을 이동하지 못하고 가상공간이라는 입체적 이미지로만 감상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이는 경험의 제한적인 재현이 었다. 그리고 VR이란 매체가 현재까진 고성능의 컴퓨터 사양을 요구하다 보니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더 나은 VR 장비와 하드웨어 장비 구입을 통해 이전 작업의 한계로부터 표현 방법을 확장해 나가고 싶었다. 문제점의 대안으로 첫 번째로 현시대에 가장 널리 이용되고 있는 HTC Vive를 이용하여 작업을 진행하고자 하였다. HTC Vive가 가진 모션캡쳐 기능을 통해 가상공간 안을 움직일 수 있어 관객을 좀 더 ‘몰입감’ 있게 가상공간을 느끼게 할 수 있었고, 향상된 컴퓨터 장비를 통해 좀 더 해상력이 좋은 결과물을 얻게 되었다.

나아가 요즘 현재 다양한 작가들이 VR을 이용한 작업을 전시장에서 보여주고 있다. 나는 기존의 방식들뿐만 아니라 VR이란 매체가 공간에서 어떻게 배치되고 보여줄 수 있는지 방법들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작업 과정

1. 기억과 이미지수집

작업의 진행 방향은 우선 기억의 물건들을 기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현재 생활과 밀접한 것들부터 시작하여 어릴 적 추억이 깃든 물건들이나 나의 성격이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끼친 나만의 물건들로 나아가아 기록하고자 했다. 어떠한 것들은 너무나도 주변에 흔히 있을 정도로 일반적이기에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분모를 갖고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어떠한 것들은 각자들만의 기억을 떠올리게끔 하는 오브제들로 작업을 구성하기로 하였다. 정리하면 두 가지의 기억의 물건들로 나뉘는데, 단기기억의 오브제, 그리고 장기기억의 오브제들이다.

단기기억의 오브제는 3가지의 조건에 의해 기억에 영향을 끼친 오브제들이다. 3가지 조건은 <1. 있었지만 없어진 것들>, <2. 없었지만 생겨난 것들>, 그리고 <3. 어디에서나 있는 것들> 이다. 어떠한 장소에 항상 있었던 것들이 사라짐으로써 내 기억에만 남아 있게 되는 오브제들도 있고, 어떤 장소에 새롭게 출현하는 오브제들도 있다. 어떠한 오브제는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여러 장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오브제들은 특별한 이야기들을 구성하지 못한 채 오브제로써만 기억 안에서 부유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자의 활동 반경인 을지로 혹은 나의 개인 공간의 아주 가까운 외부에 있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반대로 장기기억의 오브제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 안의 물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오브제이기도 하고, 혹은 어떠한 장소와 상관없이 나와 항상 붙어 있기에 내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오브제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내 생활을 대표하는 이미지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기억에도 익숙하게 존재할 수 있기에 각자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만한 오브제들이다.

2. 구현 방법

내가 설정한 조건들을 통해 선정된 오브제들을 사진으로 기록하였고 이를 가상에 재현하기 위해 3D스캔이나 모델링을 통해 가상의 오브제를 제작 하였다. 3D스캔은 이전의 작업부터 이어오던 방식이기에 익숙했지만, 사진과 계량된 수치만을 보고 모델링을 제작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방식 이었다. 퀄리티 높은 결과물을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주의 깊게 오브제들을 제작하였고, 이를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모델링하기 위해 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현재 다양한 게임회사의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으로 플러그인 형태로 제공되어 기존에 사용하던 프로그램과 연동도 쉬웠고, 높은 디테일의 표현을 적을 용량으로 데이터를 만들 수 있었다. (이는 고성능을 요구하는 VR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또한 VR을 구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인 Unity 3D 와도 호환성이 좋다는 장점이있었다.그다음 제작된 기억의 물건들을 어떤 모습을 한 공간 안에 배치할지를 고민하였다. 초기에는 기억의 오브제들이 원래 있었던 장소와 유사한 공간에 배치할까 생각하였지만, 이는 작업이 보여주는 모습을 제한 한다고 생각되어 곧 폐기되어 다른 모습의 공간을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 후 작업을 하며 기억들과 밀접한 단어를 생각해보았는데, 흘러가거나 부유하는 단어들이 기억이란 말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가상공간의 큰 구성을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들이나,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예로 보여준 의식과 무의식의 구조를 빙하로 비유한 것에서 영향을 받아 기억의 오브제들을 ‘기억의 바다’라는 공간 안에 보여주기로 하였다. 이렇게 만든 공간 안에 기억의 오브제들이 배치되는 데,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 순으로, 관객의 위치에서 멀어지는 구조를 갖게 하였다. 장기기억은 스케일의 차이로 인해 어느 방향에서나 쉽게 눈에 띄고 단단한 형태로써 구성되어 있지만, 단기기억의 오브제들은 가까이에 서만 그것들을 확인 할 수 있게 하였고 이야기 없이 형태로만 관객의 위치 에서 부유하고 있는 형태를 보여준다.

기억의 물건들과 기억의 바다라는 공간을 제작하고 배치하기 위해 Unity 3D 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였다. VR을 구현하기 위해 가장 기초적 으로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며, HTC Vive를 지원 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기억의 가상공간을 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억의 특성들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레오나르도 믈로디노프가 쓴 <새로운 무의식>이라는 책에서는 망각, 오인, 재생, 저장과 같은 몇 가지의 기억의 특징들을 설명한다. 프로그램 안에서 C#을 이용하여 몇몇 오브제 들이 관객에 반응하여 움직이는 스크립트를 만들고 설정하였는데 단기 기억의 오브제가 장기기억 오브제로 움직여 배치되거나 어떠한 기억 속의 장면들이 재생되거나 상상과도 같은 상황이 펼쳐지며 기억을 오인하게 만드는 것 등의 움직임을 작업 내에 추가시켜 놓았다. 마치 뇌 속의 뉴런들이 반응하여 전기신호를 내보내듯이 내가 만든 기억세계 안에서 기억들의 특성들이 활동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3. 작업의 구현

회화나 조각을 전시하는 것과 다르게 VR을 전시하는 방법은 곧 안전 사고와 이어지는 문제를 만들었다. VR 전시자료를 조사하는 중 시각이 제한된 상태에서 관람을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들로 인한 사고가 굉장히 다분하게 발생했다. 프로그램 안에서 활동반경을 벗어나면 경고를 하지만 전시장의 벽을 인지하지 못하고 부딪혀 장비가 파손되고 부상 당하는 경우가 있으며, 제한된 활동 반경을 벗어나 장비케이블에 걸려 넘어 지거나 다치는 등의 경우가 있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가상공간과 전시 공간에 동일한 크기의 카펫을 배치하여 촉각에 의해 움직여야 할 공간을 인식할 수 있게 하였다. 이는 동시에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촉각을 통해 느끼게 해주어 관객이 두 공간에 대해 인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전시장 안에 카펫은 텅 비어 보이는 VR 작업을 채워주는 역할도 하게 되었다.

가상공간들을 작업을 제작한 후에는 어떠한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였다. 기본적으로 VR헤드셋을 전시장에 놓고, 관객들은 이를 이용하여 가상공간을 체험하고 그 외에 VR 화면을 전시 공간 안에 스크리닝하여 VR을 체험하지 않는 관객들에게도 나의 작업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는 현재 많은 전시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보편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내 작업은 관객이 내가 만든 기억의 가상공간 안에 참여하여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공간을 2차원적인 평면으로 보는 것이 효과적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이러한 스크리닝 화면이 작업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형태로 만들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단기기억 오브제들을 이용한 영상을 제작하게 되었다. 단기기억의 오브제들이 기억의 바다에서 관객 쪽으로 서서히 흘러들어와 가상공간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관객들에게도 나의 단기기억 오브제들을 똑같이 느끼게 해주고자 했다.

위의 과정들을 통해 그 ‘따위’ 기억과 그 ‘다른’ 기억이라는 중위적인 의미를 갖는 <그딴 기억>이라는 작업이 만들어졌다.

참고자료 및 사이트

1. 새로운 무의식 / 레오나르도 믈로디노프 저 / 김명남 역 / 까치글방

2. 플랫랜드 / 애드윈 애벗 저 / 윤태일 역 / 늘봄

3. 유니티 3D / https://unity3d.com/kr/

에필로그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두 차례의 작업을 발표할 기회를 가졌고, 이때마다 작업의 방향을 잡아가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발표를 통해 지원프로그램 특성상 작가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들을 준비하였지만, 이들이 과연 주어진 매체들과 현재 기술에서 구현 가능한 것인가 대한 질문에 가이드라인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미술이란 매체가 모든 것들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어도 아이디어가 실제로 구현되기까지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작가는 이를 어떻게 컨트롤하여 구현될 수 있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배운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그리고 작업 안에서도 가상과 가상성에 대한 차이, 기억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이 어떤 식으로 재현될 때 관객들에게 소통이 될지에 관한 좋은 조언을 받았다. 이러한 조언들을 참고하여 작업을 나아가고, 가상을 통해 관객들과 기억이 ‘이전의 이야기를 불러오는 것’만이 아닌 각자가 기억하는 방식과 기억의 작동원리, 기억이 만들어내는 풍경 등 기억의 다양한 형태들에 대해 소통을 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박동준 그딴 기억 VR, Unity 3D, 사운드 가변 설치 2017

웹페이지

  • parkdongj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