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으로 유토피아를 만들다

김윤정(유유자적 라이프)

김윤정(유유자적라이프 대표)는 12년 경력의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로 인디 게임 <Afro Run>, <I Must Survive> , <선샤인(SunShine)>을 디자인했다. 그 중 <선샤인(SunShine)>은 백남준아트 센터에서 진행한 <게임잼 : 예술, 정치, 게임>(2017)에 참여하여 제작한 게임으로, 후에 독일 <A MAZE(International Games and Playful Media Festival)>에 한국 대표로 참여하였다. 융합예술센터에서는 지난 2017~2018년도 연구 프로그램에서 진행한 ‘아트 게임 프로젝트’의 연장선으로 실험적인 게임, 상호작용과 놀이 문화, 플레이플 미디어(Playful Media)에 대해 다양한 제작기와 현장 탐방기를 알아보고자 김윤정과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유유자적 라이프 : https://www.facebook.com/livefreelygames/

Q.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진행한 <게임잼 : 예술, 정치, 게임>(2017)에 참여하여 “유토피아(Utopia)”를 주제로 아트게임을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게임을 만들게 된 과정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A. 먼저, 게임잼(GAMEJAM)이란 행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제한된 시간 동안 즉흥적으로 게임을 만드는 게임개발 축제입니다. 제가 참여한 백남준아트센터의 게임잼은 <뉴 게임플레이>(2016) 전시 연계로 기획되었고, 2017년 1월 20일~22일에 2박 3일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Utopia)”를 주제로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Q. 게임잼 행사의 제목에는 ‘예술’, ‘정치’, ‘게임’이고, 게임 창작 주제는 ‘유토피아’였습니다. 생각할 부분이 굉장히 많아 보입니다. 이번 게임잼이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는지요?

A. 사실, 처음 주제를 들었을 때 그저 막막했습니다. 저는 게임을 만들어온 그동안, 누군가에게 플레이를 통한 즐거운 경험(재미)을 주는 것만이 게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제 머릿속에는 한참 동안 물음표만 가득했어요. ‘게임은 재밌어야 하는데, 이렇게 심오한 주제를 어떻게 게임으로 풀어내지?’. 사실, 저는 이번 아트 게임 <선샤인(SunShine)>을 만들기 전까지 게임이 가지는 철학적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 분야인 게임 그래픽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죠. 상업의 끝을 달리는 ‘게임’과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 자칫 이해관계에 따라 민감해질 수 있는 ‘정치’라니….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제시한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어떻게 하나의 주제와 스토리로 정리하고, 게임으로 만들 수 있을까?’ 잘 만들기 위한 고민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실행에 옮기기 살짝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SNS와 같은 외부 채널에 자신의 생각을 쓸 때, 누군가 이 글을 보면서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하고, 자체 검열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누군가와 부딪칠 수 있는 민감한 주제는 은연중에 피합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통해서 게임 창작자의 의도(메시지)를 전달받습니다. 다른 매체보다도 더 적극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게임 속에 자신의 생각, 어떤 철학을 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날 제가 용기를 낼 수 있게 도와준 것은 다름 아닌 주제발표 영상이었습니다. ‘윤리/정치/성 등을 이분법적으로 경계 짓지 말라’를 반복적으로 전달했던 그 메시지가 어쩌면 제 마음의 봉인을 해제하는 주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선샤인SunShine)>(2017)

(게임 영상 링크 : https://youtu.be/Uw4oE8C_0bQ )

Q. 그렇게 용기를 내 만들게 된 아트 게임 <선샤인(SunShine)>의 게임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주제를 어떻게 해석해서 풀어내셨는지요?

A. 저희는 주제에서 ‘선택, 희생, 균형’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간단하게 게임 규칙을 설명하자면, 저희 게임 <선샤인(SunShine)>에서 플레이어는 태양입니다. 태양(플레이어)이 비추는 곳은 생명이 번성하는 유토피아를 상징합니다. 반면에, 태양이 비추지 않는 곳은 생명이 모두 죽는 디스토피아를 상징합니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혼재된 세상에서 태양은 지구를 모든 방향에서 골고루 잘 비추어 인구를 25명까지 늘리는 것이 이 게임의 목표입니다.

게임 속 태양(플레이어)과 지구, 사람의 관계는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나타냅니다. 실제 태양이 지구 전체를 고르게 비추어 모든 곳을 유토피아로 만들 수 없는 것처럼, 햇볕이 비치는 지구에선 너무나 풍요롭고, 심지어 식량이 남아돌아 버려지기도 합니다. 반면에, 태양이 못 비추는 그 반대편에선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습니다. 그럼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태양이 좀 더 노력하면 될까요? 태양도 한계가 있고, 풍요로운 번성과 반비례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태양이 지구를 비출수록 지상에 생명은 번성하지만, 태양도 서서히 빛을 잃어 가고, 태양이 죽으면 게임은 끝납니다.

행성에 보살핌을 나눠주다보면 태양은 서서히 붉은 색으로 변합니다.

게임 속 세상을 더 행복하게 하려면 태양이 죽으면 안 됩니다. 게임이 끝나는 거니까요. 그래서 태양의 기력이 다할 때, 중대한 선택에 놓이게 됩니다. 여기서 저희는 사람과 태양 사이의 관계에서 선택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게임 속 사람들이 죽으면 ‘풍등’이 나오는데, 이는 태양의 기력을 회복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태양인 플레이어는 자신이 보살폈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길 기다렸다가 그들에게서 풍등을 얻으면 태양은 기력을 회복하거나, 또는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여기서 게임을 포기하는 선택지에 놓이게 됩니다. 그 판단은 태양(플레이어)의 몫입니다. 이 게임에서 절대 적인 선과 악은 없습니다.

태양의 보살핌이 줄어들게 되면 사람은 죽게 됩니다.

태양이 다른 곳에 햇살을 비추는 동안 이곳에서 5명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네요.

나름의 판단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소수를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하더라도 태양은 절대 그들의 희생을 잊으면 안 됩니다. 게임의 룰에는 저촉되지 않지만, 적어도 윤리적인 부분에서 말이죠.

당신의 선택으로 지금까지 희생된 이들입니다.

이처럼 게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 속에는 우리의 철학과 메시지가 은유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게임은 한번 실패했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경험상 세 번째 플레이는 두 번째 플레이보다 수월하죠.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란 한 번에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희생도 따르겠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다 보면 우리는 좀 더 나은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저희가 만든 아트 게임, <선샤인(SunShine)>에 담은 메시지입니다. 이번 게임을 만들면서 저는 게임에도 어떤 철학을 담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풍등은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라고 말씀드렸었는데요, 게임 속 풍등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많은 사람의 희생을 추모하자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게임이 만들어졌던 2017년 1월 당시 상황을 말씀드리자면, 당시 세월호는 여전히 차디찬 바닷속에 있었습니다. 정부에 대한 불신과 곳곳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책임함에 전국에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대통령의 탄핵을 두고 헌법재판이 진행되었지요. 이런 시기라, 아트게임이라도 세월호를 떠올릴 수 있는 상징들을 넣는 것이 사실은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로부터 2달 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대통령은 파면되었고, 세월호가 3년 만에 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었죠.

A MAZE Festival에서 <선샤인(SunShine)>을 시연했을 때 우주를 돌아다니는 고래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많은 외국인이 관심을 가지고 물었습니다. 고래는 행성 주변을 순회할 뿐, 게임에서 어떤 기능을 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 고래가 가진 상징적 의미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풍등에는 세월호 아이들에 대한 추모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Q. <선샤인(SunShine)>은 어떤 분들이 모여서 만드셨나요? 팀원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선샤인(SunShine)>을 만든 사람들을 소개드릴께요. (사진을 보면) 맨 뒷줄에 엄지 척! 하는 예술가 조희진, 프로그래머 이세훈, 가운뎃줄에 예술가 윤제원, 그 옆에 양손으로 V자 하는 디자이너 김윤정(본인), 그리고 맨 앞에 환한 미소를 짓고 계신 분이 디자이너 이아람입니다.

이렇게 예술가, 프로그래머, 디자이너로 구성된 팀이었습니다.

Q. 이번 게임 <선샤인(SunShine)>으로 베를린에서 열린 <A MAZE(International Games and Playful Media Festival)>에 참가하셨죠? 전세계에서 실험적인 게임재머(gamejamer)들이 한자리에 모였던 그 일주일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A MAZE : http://www.a-maze.net/ )

A. 멕시코시티를 시작으로 전 세계 8개 도시(멕시코시티, 서울, 보스톤, 자카르타, 상파울로, 노보시비리스크, 아테네, 방콕)에서 순차적으로 게임잼이 열렸고, <선샤인(SunShine)>을 포함한 10개의 게임이 선정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2018년 4월에 <선샤인(SunShine)>은 베를린에 초대되어 “Art Games group”으로 A MAZE Festival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세계 각국의 아트게임들을 보게 되었고, 게임재머들과 함께 베를린에서 아날로그 게임잼에 참여하면서 게임에 대해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Q. 어떤 아트 게임들을 보셨나요?

한국에서 열린 게임잼의 주제가 유토피아였던 것처럼, 세계 다른 도시에서 열린 게임잼의 주제 역시 비현실(Unreality, 보스턴), 다양성(Diversity, 자카르타), 해방(Emancipation, 상파울루) 등이었다고 합니다. 의미심장한 주제 덕분에 멋진 게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A MAZE Festival에 참가한 “Art Games Group” 중 일부.

이 중에서 몇 가지 게임을 소개하고 싶은데요, 첫 번째는 노보시비리스크의 아트게임, 입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기관사입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는 두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 둘 중 어느 방향을 택할 것인가는 플레이어의 선택입니다. 이 게임의 마지막 부분에는 그가 선택하지 않은 대상들의 이름이 텍스트로 올라가는데, 이 게임을 통해 플레이어는 평소 자신도 몰랐던 본인의 취향이나 윤리관을 비로소 마주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그렇게 매일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를 고장 난 기관차와 선로 선택이라는 소재로 표현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10개의 아트게임 중에 가장 놀라웠던 작품은 아테네의 아날로그 게임, <STATUS>였습니다. 신나는 음악을 틀고 의자 주위를 도는 모습이 의자 뺏기 게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게임에는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의자 위에는 저마다 다른 사물들이 놓여 있습니다. 어떤 의자에 폭신한 방석이 있는가 하면, 다른 의자에는 음식물이, 또 다른 의자는 흙투성이입니다. 사람들은 편한 의자에 앉기 위해 흥겨운 음악 속에서 춤을 추면서도 서로의 눈치를 살핍니다. 음악이 멈추면, 서로 더 좋은 의자에 앉기 위해, 의자를 뺏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아무도 의자를 양보하지 않습니다. 게임을 거듭할수록 의자는 점점 줄어듭니다. 무대 밖의 사람들은 지켜봅니다. 언젠가 스테이지 밖으로 물러나게 되리라는 것도 모르는 채,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옷을 더럽히고 엉덩방아 찧는 그들의 모습을 관객들은 유쾌하게 웃으며 지켜봅니다.

아테네의 아날로그게임 <STATUS>의 플레이 모습

<STATUS>는 힘의 위치에서 계층구조, 경제적인 위치, 그리고 윤리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죽음의 필연성, 그리고 도덕적 나침반 부족이 어떻게 인간의 생명을 보장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 만들어진 의자라고 합니다.

베를린 Kottbusser Tor 지하철역 사거리에서 사회적 게임을 만들다.

한편, 전 세계의 아트게임잼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기념으로, '지하철역 사거리에서'이라는 아날로그 게임잼을 했습니다. 성 평등(Gender Equality), 환경(Environment Issue), 문화 혁신(Innovation Culture) 그리고 사회적 유동성(Mobility Social) 중 하나를 골라 4개의 구획으로 나누어진 도시에 그 지역의 특징을 살린 가상의 작은 국가를 만드는 아날로그 게임입니다. 국가의 목표, 국가의 규칙, 애국가 등을 정하고, 어떻게 하면 국민을 늘릴 수 있을지 전략을 고민했습니다.

제가 속한 팀은 환경문제를 택한 Anti-TRASH팀이었습니다. 우리는 길거리 곳곳에서 쉽게 발견되는 담배꽁초와 깨진 맥주병, 병뚜껑을 보고, 쓰레기를 주워 오면 꽃 한송이를 주고 거리의 시민들을 Anti-TRASH 국의 국민으로 영입(서명받기)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솔선수범으로 먼저 쓰레기를 줍고, 거리의 시민들에게 우리의 취지를 알리고 함께 하길 권했습니다. 사회 공익을 추구하면서 자발적으로 동참을 유도하는 평화적인 전략을 썼더니 잠시 후 이웃 나라 국민들(성 평등, 문화 혁신, 사회적 유동성 팀)도 이 캠페인에 동참했죠. 거리는 깨끗해졌고, 게임잼이 끝난 후에도 거리의 노숙자들이 스스로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날로그 게임잼이 가져온 나비효과를 통해 어쩌면 게임으로 사회문제를 풀어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작은 희망을 보았습니다.

환경문제를 다룬 Anti-TRASH 팀.

Q. 놀이(Play)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A. 규칙이 있고, 여럿이 함께해서 즐거우면 그게 놀이이고, 게임일지도 모릅니다. <STATUS>와 아날로그 게임잼을 통해 그동안 제가 가졌던 게임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졌습니다. 은연중에 저는 게임이라면 PC든, 모바일이든, 콘솔이든 잘 짜인 규칙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STATUS>를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은 무척 밝았습니다. 만약 여벌 옷만 있었으면 저도 그들과 함께 놀고 싶었을 정도였어요.

문득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과 골목 앞에서 바닥에 분필로 줄을 긋고 작은 돌을 던지면서 놀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술래를 정하고 술래를 피해 도망가는 놀이도 있었죠. 때로는 주위 지형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는 그때부터 땅따먹기, 술래잡기, 숨바꼭질이라는 아날로그 게임을 했던 겁니다. 세월이 흐르고 그 시절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아있지만, 그때 정말 즐거웠습니다. 게임은 그것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그런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함께해서 즐거울 수 있다면 그 모든 게 놀이 아닐까 싶습니다.

베를린에서 했던 아날로그 게임잼은 게임이 사회 공익을 위해 확장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게임이 가진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공익성을 더 할 수 있다면, 작은 움직임으로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바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그 방법을 하나씩 찾아 나가야겠죠!